소년은 어떻게 남자가 되는가 혹은 남자는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영화 <스파이더 맨 2>는 이 고전적 질문에 대한 ‘정답’ 을 마련하고 있다. 왜소한 체구와 평범한 얼굴, 경제적 어려움까지. 피터는 어디에나 있고 그래서 어디에도 없는 남자다. 삶에 낙이라곤 없을 것 같은 이 남자에게는 그러나 ‘스파이더 맨’ 이라는 비밀이 있다. 스파이더 맨일 때 그는 유일무이하다. 불운과 악행의 가능성들로 늘 위급한 이 도시 구석구석까지, 한 달음에 달려가는 스파이더 맨의 존재는 과연 한밤의 등대처럼 오롯이 빛난다. 위험에 처한 선량한 민중들이 거기에 있으므로 그저 온힘을 다해 구해낼 뿐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고는 다만 딱 한 가지. 스파이더 맨이 ‘다정한 이웃’ 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평범뒤에 감춰진 초능력 갈등과 불안의 장복‥고독한 영웅의 숙명임을인정(認定)에 대한 그 사소한(!) 욕구는, 그렇지만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어제는 영웅으로 추앙하던 상업적 언론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한 순간 그를 악당과 동궤에 올려놓아 버렸다. 선의로부터 발휘된 그의 파워는 진정성을 오해받고, 대중들은 그의 진심마저 의심하는 듯하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남자의 확신이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확신이 흔들릴 때 남자는 당황하고, 그 정체성의 뿌리는 겉잡을 수 없이 동요한다. 현실의 수많은 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스파이더 맨은 자신의 능력과, 그 능력에 대한 사회적 승인의 틈바구니에서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언뜻, 피터가 스파이더 맨과 자연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영화의 주제로 보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표면적 알리바이 또는 스파이더 맨의 마스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큰 힘에 대한 남성적 욕망과 그 힘의 대의명분에 대한 강박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는 의미심장한 대사로 구체화된다. (이 말이 피터의 유사 ‘아버지’인 삼촌의 유언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잃어버린 능력은 언제 다시 생기느냐고 물론 단순하다. 대중의 마음을 직접 확인하면 된다. 제동장치가 고장난 지하철을 온전히 저 혼자의 힘으로 멈추어 착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했을 때, 탈진하여 쓰러진 ‘아직 어린 소년’을 앞에 두고 시민들이 소박하게 찬탄하고 감동할 때, 그는 더 이상 가면으로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다. 방황하던 소년 피터 파커는 사춘기를 무사히 통과하여 명실상부한 진짜 사나이, ‘다정한 영웅, 스파이더 맨’으로 재 탄생했다. 그렇다면 제 운명의 직물을 스스로 짜는 운명의 주재자 ‘거미 남자’ 는 이제 진정한 영육 일체를 이룬 것인가 불안이란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핏줄 속에 잠복되어 있는 것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기 때문에 그 남자는 언제나 외로울 테지만, 아아 어쩌랴, 고독이야말로 영웅이 안고 가야할 숙명이자 영원한 트레이드마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