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이니, 웬일이니∼.” 이것은 <뉴논스톱>에서 정다빈이 입에 달고 살던 호들갑스러운 추임새다. 이어질 긴 담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그 대사는 아마도 그의 실제 캐릭터를 반영한 것이었으리라. 그와의 인터뷰는 마치 학창 시절 단짝 친구와 나눴던 수다 같기 때문이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닭고기가 제일 좋아요. 아! 언제 저랑 같이 KFC 가실래요?”라며 눈을 빛내는 정다빈. 좋아하는 배우를 묻자 옛날부터 동경했던 “심은하 언니” 얘기로 정신이 없다. “우연히 언니를 동물병원에서 마주쳤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데려갔던 강아지를 두고 나왔다니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한숨. 그에 대해 한 문장만이 가능하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녀는 귀여웠다.’
깜찍한 눈웃음을 뺀다면 정다빈의 얼굴은 평범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별볼일 없는 평범한 여고생이 킹카 지은성(송승헌)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는 <그놈은 멋있었다>의 여주인공 예원은 영락없이 그를 위한 캐릭터다. 그가 <짬뽕>을 이박사 버전으로 불러젖히면서 엇박 탬버린의 진수를 보이는 노래방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될 것이다. 어떻게 그런 연기가 나올 수 있었냐고 신기해하자, “제가 음치에 박치라서 가능했죠. 아침 7시에 제정신으로 찍었는데 한번에 OK가 난 거 있죠?”라면서 으쓱거린다. 최진실의 아역으로 출연했던 <단적비연수> 이후 두 번째 영화이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감독님께서도 너무 잘해주셨고, 현장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며 지난 촬영을 회고한다. 일례로, 지은성이 예원에게 일찍 집에 들어가라면서 윽박지르는 장면에서 그의 대사 “웃기셩∼”은 원래 대본에서는 “웃기네∼”였다. “그냥 그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감독님께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말하라고 하셨지만, 전 그냥 카메라 앞에서 해버려요. 근데 사람들이 그걸 다 맘에 들어했고, 결국은 그 대사로 간 거예요. 그렇게 까불다가 한대 맞는 게 예원이랑 더 어울리지 않나요?” (웃음)
첫 영화를 찍으면서 어느 정도는 주눅들고 긴장하는 것이 보통의 배우들이지만, 무슨 일이든 즐겁게 생각하는 그에게 현장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놀이터였다. 뒤늦게 입학한 대학 연극영화과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 지난해 ‘연기자’ 정다빈을 사람들에게 알린 <옥탑방 고양이>를 찍을 무렵 진학을 결심했다는데, 그 이유가 너무나 솔직하다. “연영과에 다니는 래원이가 카메라 위치가 어쩌고 하면서 아는 척하는 데 샘이 나더라구요.” 하지만 5년씩 어린 친구들과 연예인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애들이 말하는 걸 잘 못 알아먹겠어요. ‘안냐쎔’, ‘므흣’, ‘즐’ 이게 도대체 뭔 말이에요?” 기자라고 알 리가 있나. 말문이 막혀 잠시 눈만 끔뻑거리자, 금세 자랑이 이어진다. “‘연기와 자기표현’이라는 수업의 교수님이 정말 좋은 분이세요. 활동 때문에 힘들 텐데 출석을 안 해도 된다는 걸 열심히 나갔더니, 제 덕분에 수업 분위기까지 좋아졌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시험 때는 시험지 3장에 영화 찍은 경험을 빽빽하게 채워서 냈고…. 학점도 얼마나 잘 나왔는데요.”
정다빈은 스스로를 “잘 믿고 잘 속고 그래서 늘 당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외가와 친가를 통틀어 집안의 유일한 여자아이로 언제나 공주처럼 자랐기 때문이라지만,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흔한 능력은 아니다. 언제나 주목받는 스타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기자에 대한 거부감, 시도때도 없이 사인을 요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팬들에 대한 부담감도 그에게는 없다. “팬들은 언제나 내 편인 사람들이잖아요. 어떤 일을 하든지 팬들을 생각하면 열심히 즐겁게 하게 되요.” 그가 카메라 앞에서 빙글 돌자,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그 포즈가 맘에 드는지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그저 즐거워하는 그 모습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구김살이 없는 사람이 풍기는 달콤한 향기, 그게 평범한 정다빈의 특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