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귀신’을 불렀다,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2004-07-1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국내 첫 개봉작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 서면 인터뷰

미이케 다카시는 ‘미친’ 감독이다. 필모그래피가 50여편이 넘는다. 매년 대여섯편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작품의 질도 천국에서 지옥을 오간다. 그러나 말 그대로 그가 작품을 쏟아내놓을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영화 신도들은 그 질에 상관없이 같이 미치고, 준엄한 척 일본의 B급영화를 경시하던 평단도 그 광기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고나면 미이케 다카시는 다시 훌쩍 몇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면서 멀리 도망간다. 그의 영화 속에 들어 있는 피의 철학과 웃음의 부조화에 내기를 걸려고 마음먹을 때 언제나 먼저 백기를 흔드는 것은 보는 자들이다. 그가 한국에 개봉하는 자신의 첫 영화 <착신아리>에 대한 변을 보내왔다. 무성의한 듯, 심오한 듯, 헷갈리게 하는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세계의 기운이 이 대답들 속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영화 중독자’ 미이케 다카시의 음성을 읽어보자.

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제외한다면, <착신아리>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하는 당신의 첫 영화다.

내 영화 <오디션>이 한국에서 수입·보류된 것에 대해서는 좀 섭섭한 마음이 있다. 부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오디션>을 필두로 내 영화세계를 인식하게 되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나는 다작을 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착신아리>가 한국 관객에게는 첫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오디션>을 거쳐 <착신아리>까지 엽기적이고 장르성이 강한 작품만을 봐왔으므로 나의 그런 특이한 면만을 부각해서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겐 이 영화들이 매우 긴장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도가와라는 메이저 제작사와의 첫 작품이므로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된 작품이다. 그전의 제작 방식과는 매우 달랐고, 감독으로서 힘든 점도 있었고 배울 점도 많았던 작품이다.

당신은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착신아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다 표현하게 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줬던 다이에이가 가도가와와 합류하고 나서의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공포물에 대한 선택은 다이에이로부터 들어온 제안이었다.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꼭 귀신이 나와야 공포물이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착신아리>에서는 결국 귀신이 등장한다. 그건 가도가와로부터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많은 대중이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귀신이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 생각에 내가 동의를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귀신이 나온 것이 잘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귀신이 없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느끼게 될 공포감 역시 알 수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착신아리>는 그래서 귀신이 나오는 영화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태어난 이후의 일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착신아리>의 저주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여인의 소망에서 출발한다. 그건 <오디션>의 여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오디션>과 <착신아리>의 여성 캐릭터, 특히 원한을 가진 여인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여성이란 존재는.

영화 안에서는 특별한 존재로 그려져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마음에 쌓아 둔 것은 죽어서도 따라다닌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영혼이 된 순간에 인간으로서의 원한과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광기(狂氣), 산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바로 영화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남자인 이상 남자 귀신이 저주하는 것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자의 한이라는 영혼으로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말하면 굳이 여성에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착신아리>는 일본의 메이저인 가도가와 영화사에서 만들었다. V시네마에서 출발한 당신이 볼 때, 거대 영화사와 소규모 영화사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앞서 말한 것처럼 가도가와의 제작방식은 분명 그전에 내가 경험한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건 감독으로서 좋은 점일 수도 있고 나쁜 점일 수도 있다. 사실 많은 사람과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면 힘든 점이었다. 이제 모든 문화적 행위가 시스템화되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점점 블록버스터화되고 더 많은 관객을 타깃으로 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스템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착신아리>는 그런 점에서 이전의 내 작품보다 더 많은 공력과 시간이 투자된 셈이다.

당신은 V시네마로 시작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거장이 되었다. 외국의 평론가나 언론이 당신 영화의 어떤 점에 주목한다고 생각하는가.

핵심이 되는 팬층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일본 내에서나 세계의 평론가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들은 내가 다작을 하면서도 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평가해주는 것 같다. 혹은 배반도 실망도 아닌 감정으로 미이케니까 어쩔 수 없다… 저게 미이케 스타일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늘 다음 작품에는 뭔가 새로운 걸 들고 나타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어쨌든 내게 우호적인 평론가들이 많다는 건 참 행운이다.

한때 당신은 1년에 5, 6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지금도 3, 4편씩은 만드는 것 같다. 예전에도 ‘그냥 시간이 있어서’란 답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영화를 많이 만드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런 작업방식이 당신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다.

올해는 평소보다도 적게 작업하고 있다. 그것 역시 <착신아리> 이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많다, 적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제작예산에 관한 것일 뿐 나의 에너지 혹은 노동력은 언제나 충만해 있다.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는 TV드라마의 보조로서 10년간 일을 한 사람이다. 그때도 촬영에서 시간기록까지 세웠던 사람이다. 나는 쉬는 것보다 차라리 촬영하고 있는 게 편하다. 빨리 찍는 감독이라는 평은 촬영 자체에 대한 중독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3년 전에 당신은, <고로시야 이치>가 가장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고 말했다. 지금 당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기획하고 있는 작품이 가장 찍고 싶은 작품이다. 아직 제작발표를 한 작품이 아니라서 구체적인 것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다룰 것이고,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캐릭터가 장대한 싸움을 펼치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트로이>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장대한 영화라고만 말해두어야 겠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작이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풀어보려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영화, 좋은 영화, 걸작이란 무엇인가.

좋고 나쁜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영화와 하기 싫은 영화가 있을 뿐이다. 그게 결국 좋고 나쁨을 얘기하는 거라면 당신의 이견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객관적인 기준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요즘엔 좀 달리 생각하는 점이 있다. 바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관객과 타협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면, 타협이 아니라 서로 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의미한다고 대답하고 싶다. 내 경우엔 작품도 많았고 관객이 미이케 스타일이라고 먼저 받아들이니까 공감대를 얻기 쉬워진 점도 있다.

당신 영화는 폭력의 강도가 꽤 세다. 그리고 변태적인 행위들도 자주 등장한다. 반사회적인 행동과 생각들을 자신의 영화에 자극적으로 담아내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특별히 폭력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러나 분명 폭력적이라는 우려는 낳을 수 있으므로 그 폭력이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 때까지 가버리게 하는 것이다. 조연이 얻어맞았다고 치고 그 상황에서 끝나면 조연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어차피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기게 된다면 조연을 좀더 멋있게 처리해줘서 반감을 완화한다든지 그런 감정적인 화해의 빌미를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폭력적인 표현 자체가 사람에 대한 나의 애정표현이라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보여지는 것만을 통해 ‘폭력’이라고 정의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의 영화는 무정부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고, 어떤 가치관이나 규율에 속박되지 않은 채 자신의 선택만을 중시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D.O.A.2 도망자>의 두 남자처럼, 악당 하나를 죽이면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몇명 구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 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멋있는 남자’란 무엇인가.

나의 꿈과 이상과 실제 나 자신의 한계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 그 사이를 좁혀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무 멋있는 모습은 비현실적인 것이니까. 일본으로 말하자면, 다카쿠라 겐과 같은. 내가 어떻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빨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스타일, 내 철학으로 다른 사람을 빨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생각이 다르지 않나?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그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영화는 침체, 라는 말과 지금 원기 회복 중, 이라는 말이 몇년간 반복되는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본영화의 현재는 어떤가. 혹시 요즘 재미있게 본 일본영화와 감독이 있다면.

최근, 특히 쓰카모토 신야 감독에게 관심이 끌리고 있다. 어렸을 때 유명해지고 싶어서 세계적인 규모의 영화계에 심취했으며 다시 일본의 현실로 돌아와 일본을 베이스로 제작에 임하면서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을 느끼며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부딪혀가는가에 흥미가 있고 쓰카모토 감독의 앞으로의 작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너무 폭발적으로 나아가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의 본질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어떻게 조율해가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기대하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본성을 나타내기 어려운 것이 영화이지만, 자신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감독을 계속 기대하고 있다.

당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일본의 미래는 무척 비관적인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본과 일본영화의 미래는 무엇인가.

일본 영화계가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여러 영화와 문화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사람을 움직이는 영화는 역시 일본 감독만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계적인 영화들 속에서 일본영화가 다시 부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먼저 일본 관객을 바라봐야 하고 다음에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50편이 넘는다. 그중에서 한국 관객에게 3편을 추천한다면.

<방문객 Q> <오디션>을 추천한다. 좀 치우친 영화이므로 이런 영화들에 지쳤다면 〈DOA>가 기분 전환용이 될 것도 같다. <착신아리>는 개봉영화이므로 제외한다.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 계획하고 있는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과 또 다른 생명체가 대결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 그 이상의 혹은 그 이면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평범한 것은 어찌보면 위선일 수도 있다. 우리 내면에는 많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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