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브룩하이머를 비롯하여 <킹 아더>로 뭉친 할리우드 최고의 블록버스터 메이커들에게 아더 왕의 서사는 신화가 아닌 “실화”였다. <글래디에이터>로 이미 명성을 확보한 작가 데이비드 프란조니는 브리튼에 파견된 로마의 지휘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라는 실존 인물에게서 신화 속 아더 왕의 모습을 발견해냈다. 그는 아토리우스의 군대가 색슨족과 바돈 힐에서 벌인 실제 전투에 초점을 맞추어 아더 왕의 서사를 재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화의 중심은 단연코 고뇌하는 영웅 아더의 몫이고 신화 속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삭제되거나 퇴색된다. 아더 왕의 전설을 지탱하던 성배를 찾는 원탁의 기사나 마법의 검, 엑스칼리버에 대한 에피소드 혹은 아더, 란슬롯, 기네비어 사이의 삼각관계나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 등은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신과 로마를 전쟁의 명분으로 들먹이는 로마의 제마누스 주교와 아더의 갈등을 전반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아더의 내적 갈등을 후반에 배치한다. 실존 인물 아더가 서사의 중심이 되자 신화 속 판타지를 넘나들던 캐릭터들은 단순화된다. 사마시안 기사들 각각의 캐릭터는 의상이나 무기들에 의해서만 간간이 구별될 뿐, 그들의 언어나 성격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해내기 어렵다. 이 영화가 내세우는 독창적인 인물 기네비어 역시 몇번의 활시위와 색다른 의상으로 여전사의 이미지를 완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그녀는 결전의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용맹스러운 남자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 전형적 시대극의 여인에 가까워 보인다.
아더 왕의 전설을 움직이던 “운명의 힘”이 마법과 함께 자취를 감춘 자리에 감독과 작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내세운다. 지배와 복종을 정당화하는 로마 가톨릭 대신 “인간의 운명은 선택 가능하다”는 펄레이저스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아더나 “인간의 본성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고 외치는 기네비어의 모습은 영화의 핵심을 대변한다. 엑스칼리버는 더이상 아더에게 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마법의 존재가 아니라 아더의 의지를 실현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아더를 움직이는 힘은 로마와 신이라는 필연적인 운명이 아닌 자유와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다. 사마시안 기사들에게도 자유란 15년간의 전쟁을 견디게 해준 결정적인 힘이며 색슨족과 홀로 대면한 아더를 버리지 못하고 결국 전장으로 돌아가게 만든 이유가 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아더가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로마를 위해 싸웠다”고 절망할 때처럼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들이 외치는 자유 역시 실체없는 “대의”가 되어 추상적 가치로 허공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19대의 카메라를 동원했다는 바돈 힐의 전투장면이 영화적 무게에도 불구하고 맥락이 사라진 CF장면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별다른 설명없이 설파되는 “자유”에의 절대적인 신봉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만큼이나 단순할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킹 아더>는 아더 왕을 둘러싼 인물들과 사건들간의 다채로운 갈등에 초점이 맞춰지던 신화적 전통 대신 색슨족이라는 외부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선악의 구도 속에서 자유를 논하는 지극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적인 공식을 지켜낸다. 21세기에 부활한 아더 왕의 서사는 상상력을 죽이고 자유 의지로 통합 브리튼을 이룩한 근대적 영웅을 탄생시키며 무늬만 다른 또 한편의 전쟁 서사를 완성했다.
:: 아더 왕의 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들
탄생의 비밀부터 란슬롯의 파멸까지
풀면 풀수록 그 보따리가 풍성해져만 가는 오래된 신화. 위대한 창작자들이라면 그 신화에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보태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아더 왕의 전설 역시 사랑, 복수, 증오 등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부터 마법, 성배와 같은 거대 서사까지 가로지르는 이야기들로 많은 감독들을 매혹시켜왔다. 로베르 브레송의 <호수의 란슬롯>(1974)은 아더 왕의 전설 중에서도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성배를 찾지 못한 기사들이 아더 왕의 성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기네비어에 대한 사랑과 아더 왕과의 관계로 갈등하는 란슬롯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다. 브레송은 담담하지만 비극적인 시점으로 란슬롯의 파멸과 아더 통치기의 몰락을 재현하고 있다. 기사들의 마상 대결 장면과 전투 중 기사들의 몸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가 인상적이다. 에릭 로메르의 <웨일스인 페르스발>(1978)은 중세원탁의 기사들 중 한명이었던 페르스발에 대한 이야기다.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 페르스발이 아더 왕과의 대면 뒤 성배를 찾아가는 모험담. 12세기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페르스발 또는 성배 이야기>를 원작으로 재구성했다. 로메르는 연극무대처럼 꾸며진 인공적인 세트와 음유 시인들, 고대 프랑스어 등과 같은 시각, 청각 이미지로 중세의 이상주의를 재현해낸다.
아더 왕 전설에 관한 가장 완벽한 요약본이라고 할 만한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1981)는 토머스 맬로리의 <아더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아더의 탄생 비밀부터 기네비어와의 만남, 멀린의 마법, 엑스칼리버의 비밀,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불륜, 이복누이인 모르간의 복수, 사생아 모드레드, 성배를 찾아가는 기사들의 여정을 포함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한편의 영화 속에 녹아 있다. 정신분석적인 상징들과 대사들, 그에 따른 색상과 음악의 사용이 영화에 몽환적인 기운을 부여한다.
한편 비교적 최근작인 울리 에델의 <아발론의 여인들>(2001)은 마리온 짐머 브래들리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원탁의 기사들이나 아더 왕이 아닌, 아더의 이복누이 모르간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르간은 더이상 사악한 마법사가 아니라 원시 종교와 아발론을 지키려는 비극적 운명의 여사제로 탈바꿈한다. 여인들의 시점으로 구성된 아더 왕의 시대라는 점에서 기존의 해석들과 차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