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광주 시민, <블러디 선데이>의 막간에서 읽은 광주의 진실을 말하다
2004-07-21

마치, <블러디 선데이>의 두 대립진영처럼 광주항쟁 당시 박몽구 시인은 전남대 영문과 재학 중이었으며, 이경남 목사는 11공수여단 63대대 9지역대 소속 계엄군이었다. 지난 6월22일 <블러디 선데이>를 같이 본 두 필자는 광주의 기억을 돌이키며 영화읽기를 쓰게 되었다. 편집자

최근 개봉된 영화 가운데서 <블러디 선데이>는 필자에게 여러모로 흥미가 깊었다. 블록버스터영화들이 범람하는 풍토에서 보기 드물게 다큐멘터리 형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것도 광주민중항쟁과 비슷한 성격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마침 필자는 우리 영화계 일각에서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가 준비되고 있다는 입소문도 듣고 있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겸 이 영화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스크린은 열리자마자 시위 현장이 아닌 한 평범한 가정의 저녁 풍경을 보여준다. 따스하게 부푼 빵이 차려진 식탁, 식구들간의 구김살 없는 대화와 울긋불긋한 털스웨터처럼 포근한 포옹…. 이윽고 땅거미가 덮이고, 신교도인 헤스더는 생일을 축하해주러 방문한 17살의 청년 제리 도히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좀더 늘리고 싶어, 마을 앞 계단까지 배웅해준다. 하지만 다음날로 예정된 구교도들의 시민권 보장을 위한 데리 시민들의 평화 행진이 걱정되기도 한다. 남자친구 제리는 데리 훌리건 소속으로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어스름한 가로등 밑에서의 포옹 뒤에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는 구교도 남친에게 “내일 아무 일 없어야 돼” 하고 손을 흔드는 헤스더의 모습은, 먼 이국 소녀가 아닌 불안한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우리 시대의 초상처럼 느껴졌다. 신은 인간이 좀더 강해지도록 잠깐의 불행을 선물한다던가. 스위트홈을 꿈꾸던 청년 제리는 계엄군의 눈을 가린 총격으로 꽃잎처럼 지고 말지만, 그의 죽음을 딛고 수많은 제리 도히너들이 탄생하는 것을 역사는 사필귀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블러디 선데이>를 보면서 사랑만이 어두운 세계를 환히 밝힐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했다. 신교도 출신 하원의원 아이반 쿠퍼가 비폭력의 시민 행진을 통해, 이교도들의 비인간적인 삶을 개선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은 역시 이교도인 애인 프랜시스를 향한 열정 덕분인지도 모른다.

데리와 광주가 닮은 점: 사랑이 바탕이 된 투쟁

데리 시민의 항쟁과 광주민중항쟁이 닮은 점이 있다면 우선 이같은 위대한 사랑의 힘이 바탕이 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변혁운동은 계층 내지는 계급의 이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데리와 광주에서의 투쟁은 이런 것을 뛰어넘어 온 시민이 일체가 되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또한 민중의 희망에 철저하게 눈을 가린 권력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는 것도 두 도시의 드라마간의 공통점이다. 피의 일요일에는 처음부터 공수부대가 투입된 것은 아니다. 애초에는 경찰 병력 등이 시위대의 행진로 등을 차단하던 수준이었고, 공수부대는 외곽에 대기하고 있는 형세였다. 그런데 공수부대 지휘부는 휘하의 장병들을 향해, 폭도들은 매우 과격할 뿐더러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세뇌시킨다. 실제로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공수부대가 투입되면서, 경찰 대신 공수부대 장교가 지휘관을 장악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먼저 발포해놓고도, 무장시민군이 쏜 총이라고 강변한다. “표적이 어디 있느냐?”고 다그쳐 묻는 병사에게, 장교는 표적을 좀처럼 지적하지 못하다, 마침내 저 수많은 폭도들이 시위대가 표적이라고 선언하고, 이어서 비무장의 시위대에 퍼부어지는 무차별 총격…. 14명의 무고한 희생자들 앞에서 쏟아지는 눈물과 탄식은 역사의 심판을 예고한다.

광주민중항쟁을 영상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도, 기존 지휘체계를 벗어난 공수부대의 역학은 면밀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산골 등에서 장차 오열의 침입을 퇴치하기 위한 고강도의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정상 생활과 거리가 멀게 살아왔던 공수부대는 광주에 투입되자마자 온 시민을 단순 폭도가 아니라 공산주의에 물든 것으로 알고 눈먼 총구를 주인인 시민에게 들이댔던 것이다.

데리와 광주는 이처럼 동류항을 지니고 있지만, 분명하게 다른 점들도 있다. 데리의 만행이 단 하루에 그친 데 반해 광주는 무려 일주일 이상 진행되었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 혁명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전남도민의 온힘이 모아져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데리와 비할 바가 아니라고 본다. 이제까지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하여 몇편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꽃잎> <박하사탕> 등의 영화에서는 미증유의 재난이 가져온 충격을 견디지 못한 정신이상자 등으로 캐릭터가 설정되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영화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올바른 민주의식과 투쟁정신을 구현한 캐릭터가 채택되어야 한다. 광주문제가 이제껏 한번도 정면에서 다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은 새삼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블러디 선데이>가 반문명의 만행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사랑의 결실이라는 지극히 소박한 꿈을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도 깊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랑의 메시지를 통하여 지구촌적인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광주를 영상으로 옮김에 있어서도 광주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 나아가 지구촌적인 공감의 요소는 무엇이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진정한 민주화를 향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디지털과 정보화 시대를 맞아 신세대의 공감대를 자아낼 새로운 방법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 박몽구/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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