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모델이 되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털털한 성격의 조각가 해미(김유미). 그는 모델 같지 않은 직업모델 태승(심형탁), 19년 넘는 세월을 인형 데미안과 살아온 영하(옥지영) 등 자신과 같은 이유로 모여든 네명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을 맞는 것은 음산한 인형제작자(김보영)와 최 관장(천호진), 이유없이 해미의 주변을 맴도는 미나(임은경), 그리고 곳곳에 존재하는 괴기스러운 인형들이다. 가장 불안해 보이던 영하가 발작을 일으키고 그의 인형이 파괴되면서,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운명은 조금씩 그 정체를 드러낸다.
정용기 감독은 <인형사>가, “CG를 남발하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중점을 둔 영화가 아니며, 미술관 곳곳의 인형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으로 공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영화는 자극적인 CG보다는 세심하게 디자인된 세트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고, 인형같은 외모의 임은경은 그 커다란 눈망울 가득 애틋함을 담아 색다른 공포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도처에 위치한 인형들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이제는 진부해진 장면들(목덜미를 만지는 누군가의 손, 갑자기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유령 등)이 빈번하게 배치되면서, 위의 진술은 결국 절반의 거짓으로 남게 됐다.
오프닝에서 소개된 ‘사랑한 여인을 똑 닮은 인형을 만든 남자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중요한 설정으로 밝혀지는 등 영화의 곳곳에는 필연적인 반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형사>가 중요시하는 것은 무심한 인간에게서 잊혀진 인형의 애틋한 배신감. 그러므로 반전의 퍼즐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해도 이는 커다란 흠이 아니다. 반대로 <인형사>가 스스로 내세웠던 ‘버림받고 잊혀지는 약자의 슬픔’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정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슬픔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읊는 몇 마디 대사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