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 맨> 시리즈가 보여준 슈퍼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미덕
쿨한 유행을 따르면서 쿨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유감스러운 정보 하나. 대부분의 쿨한 유행들의 수명은 한심할 정도로 짧다. 아프로 헤어스타일, 벨버텀, 맥가이버, 백 스트리트 보이스…. 세월이 한번 휙 지나가면 여러분의 과거는 당시까지만 해도 쿨하기 짝이 없던 이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묶여 자식들과 손자들의 영원한 조롱거리가 된다.
물론 유행을 타지 않는 것들도 있다.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은 프랭크 아발론의 유행가들보다 몇 백년이나 더 나이를 먹었지만 지금 그 곡을 듣는다고 촌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베토벤은 처음부터 쿨함 따위에 신경을 쓰면서 7번 교향곡을 작곡한 건 아니었다. 그는 유행을 따르는 무언가를 만들었던 게 아니라 유행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다. 물론 그런 태도 자체가 당시의 유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가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
슈퍼히어로 만화책은 베토벤 7번 교향곡이 누렸던 혜택은 받지 못한다. ‘쿨함’은 그들에게 기초적인 예술적 성취도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니, 상업적인 면만 고려한다면 성취도보다 더 중요하다. 이런 종류의 만화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주인공이 얼마나 쿨한가일 테니. 덕택에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슈퍼히어로 만화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슈퍼맨>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몇년 동안 슈퍼맨은 팬티를 바깥에 입는 그 유치찬란한 스판덱스 옷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만화에서는 망토를 없애보았고, <로이스와 클락>에서는 엄마가 재봉틀로 달달거리며 만들어준 자랑스러운 옷이라고 변명도 해보았으며, <스몰빌>에서는 아직 없었던 때라고 주장하며 유니폼을 주지 않았다. 이 다양한 시도들은 모두 ‘쿨함’의 유지라는 임무와 연결되어 있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레이미가 이 시리즈의 ‘쿨함’을 다루는 방식이다. 레이미의 방식은 최근에 나온 어떤 슈퍼히어로물과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경향을 대표하는 예로는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을 들 수 있을 듯하다. 싱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영화를 ‘언쿨’함으로부터 보호했다. 우선 우스꽝스러운 닉네임들을 일부러 놀려대며 자기가 먼저 웃었다. 둘째, 원색의 알록달록 스판덱스를 조금 더 쿨해 보이는 검은 가죽옷으로 바꾸었다. 물론 여전히 유니폼에 대한 농담을 달면서. 싱어의 목적은 세월이 흐르며 ‘언쿨’해진 만화적 요소들을 자신이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 요소들을 살짝 변경하면서 의도한 만큼의 쿨함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미는 ‘쿨’함을 보존하기 위해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원작 그대로인 원색 유니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사실 스파이더 맨의 유니폼은 꽤 그럴싸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정말로 재미있는 건 여기에 스파이더 맨의 언쿨함에 대한 그 어떤 변명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상화는 훌륭한 변명이 된다. 유니폼을 세탁기에 넣고 함께 빨았다가 핑크색 속옷을 만든 피터 파커의 수난은 포스터모던한 자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엑스맨>과는 달리 피터의 수난은 장식이 아니다. 피터의 수난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건 피터 파커가 ‘쿨’하지 않다는 것이다. 피터 파커는 슈퍼히어로 유니폼을 입고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평범한 젊은이다.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은유로 확장시키는 방식은 마블 코믹스의 전통이라고 부를 정도이니, 이 자체는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레이미는 그런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이런 이야기에서 흔한 나르시시즘을 빼버렸다. 이 영화의 피터는 <엑스맨>의 뮤턴트들처럼 “아, 나는 세상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그들은 모두 나를 증오해!”라는 아리아를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다. 그는 대신 자기 힘이 닿는 데까지 세상을 구하고 그걸 자신의 사생활과 조화를 이루고 싶어한다. 그는 쓸데없는 인문학적 로맨티시즘과 감상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실용적이고 성실한 자연과학도이다.
나르시시즘이 지워지자, 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흥미로운 방향으로 전환된다. 가장 재미있는 건 스파이더 맨과 뉴요커들의 관계이다. 특히 2편에서 그려지는 군중은 분명하고 단선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엑스맨> 시리즈보다 더 풍요롭다. 특히 전철장면에서 그들이 스파이더 맨과 맺는 순진무구하기까지 한 선량한 유대관계는 놀랍기까지 하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통해 레이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쿨’함에 집착하지 않고 정공법을 지키면서도 훌륭한 슈퍼히어로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거의 클래식 할리우드 시대를 연상시키는 그 순진한 접근법 때문에 <스파이더 맨2>는 최근에 나온 그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보다도 쿨한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