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와 <령> 등 올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을 면치못한 한국 공포영화의 ‘재기’를 다짐하는 공포영화 두편이 잇달아 개봉한다. 서구영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인형의 공포를 소재로 끌어온 <인형사>(7월30일 개봉)와 집단 따돌림 문제를 모티브로 하는 <분신사바>(8월5일 개봉)는 원귀가 등장하는 복수극이면서 두 편 모두 ‘슬픈’ 공포영화를 지향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버림받은 인형의 분노와 슬픔 <인형사>
악마의 영혼이 깃든 인형이 사람을 공격하는 영화 <사탄의 인형>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인형은 사람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공포영화가 애용해온 소도구다. <인형사>에서 공포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와 도구도 인형이다. 한때 피붙이처럼 사랑받았으나 다른 장난감에게 자리를 빼앗겨 버림받은 인형이 영혼을 얻어 전 주인에게 복수를 꿈꾼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이루며 사람처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관절인형(관절이 공모양으로 된 인형)들이 공포의 디테일을 구성한다.
사람같은 인형들 등골이 오싹 연쇄살인 추리 형식은 어설퍼
외딴 숲속의 작은 인형박물관에 서로 초면인 네명의 남녀가 초대받는다. 일주일 동안 이곳에 머물며 구체관절인형의 모델이 될 이들은 옷장 안의 인형이 움직인다거나 집에서 가져온 인형이 발기발기 찢겨지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조각을 전공하는 대학생인 해미(김유미)가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검은 머리 소녀를 이상하게 여길 때쯤 초대받은 이들이 하나씩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인형사>는 인형이 원귀가 되어 나타난다는 귀신영화에 연쇄살인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추리극 형식을 가미해 ‘공포’와 ‘긴장’이라는 두가지 목표에 다가가려한다. 유난히 깊은 눈망울에 사람과 유사한 체형을 가진 구체관절인형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섬뜩함을 유발하는 전략은 비교적 성공적인 듯하다. 그러나 잇다른 죽음을 풀어가는 추리를 엮어가는 형식은 미숙하다. 특히 생면부지의 네명이 한 장소에 모이게 된 사연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오늘”이라는 말로 시작돼 줄줄이 말을 통해 밝혀지는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뚝 떨어뜨린다. 인형을 연기한 ‘인형같은 외모’의 배우 임은경은 특별한 연기를 하지는 않지만 깊은 눈망울에서 버림받은 자의 슬픔이 느껴진다.
마을과 학교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복수극 <분신사바>
서울에서 전학왔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유진(이세은)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분신사바 기도를 한다. 다음날부터 그들이 노트에 이름을 적었던 아이들이 한명씩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불을 붙이는 잔인한 방식의 자살을 한다. 한편 학교에 전근온 미술교사 은주(김규리)는 30년 전 죽었다는 인숙의 유령을 교실에서 본다.
학교 울타리 넘은 집단 따돌림, 공포 느끼기엔 익숙해진 공식
<분신사바>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귀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 복수를 감행한다는 귀신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천천히 발목을 감아오는 귀신의 손이나 옷장 안, 문틈에서 쓱 나타나는 귀신의 얼굴 등 관객을 놀래키는 방식도 이 공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저곳에서 기어나오는 귀신들 역시 <링>의 아찔했던 텔레비전 귀신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이제는 공포를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익숙해진 관습들이다. 최면을 이용한 심리살인극이 마지막에서 갑자기 사지절단하는 스플래터 영화로 바뀌는 건 영 어색해보인다.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