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당신 주위에 이런 여자 있나요? <여자, 정혜> 촬영현장
2004-08-02
글 : 김도훈
사진 : 이혜정

마포구 신수동의 아침. 오후에는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약간 구름이 낀 아침의 선선한 기운 속에서 <여자, 정혜>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날의 촬영분은 정혜(김지수)가 우편 취급소를 나서는 남자(황정민)를 황급히 따라가 식사 초대를 하는 장면. “로맨틱한 연애영화의 한없이 가볍기만 한 감정이 아닌, 마르고 가슴 아프게 다가가는 세밀한 감정”을 전해주기 위해 감독과 배우들은 고심 중이다. 스탭들은 지나가는 행인들 같은 작은 변수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혜가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장면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의 영화라 따로 길을 막아두지도 못했을 뿐더러, 촬영장소가 중학교 옆이라 아침부터 축구하는 남자 중학생들의 짓궂은 호기심도 약간의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거리가 말끔하게 통제되자 본격적으로 시작된 촬영. 정혜는 길을 가로질러 남자에게 다가간다.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온 고양이만이 그녀의 사랑이었지만, 이제 그녀는 작은 용기를 내어 남자를 부른다.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식사하지 않을래요?” 아무 말도 없는 남자. “그냥… 저, 집에 고양이가 있는데 혹시 좋아하시면, 한번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정혜’는 우리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여자다. 어린 시절에 입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를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살아가는 여자. <여자, 정혜>는 그런 여자, 정혜가 갑작스레 다가온 작지만 기적 같은 사랑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는 영화다.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이윤기 감독은 내러티브의 커다란 변화가 없는 이 영화를 두고 “비올 것 같은 하늘 색깔과도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우울한 희망을 안겨주는 영화라는 뜻일까. 여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힘든 일일 테지만 감독은 “확실치 않은 감정이라도 배우들과 함께 접근해가는 것이 실험적”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쉬운 작업은 아닌 듯하다. TV의 스타지만 영화 나들이는 처음인 김지수에게 <여자, 정혜>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얼굴로 표현하지 말고 해달라”는 다소 까다로운 감독의 주문을 즉각적으로 연기로 소화해내기도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촬영 전에는 많이 걱정을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이렇게 긴장을 안 하고 찍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불편함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김지수는 컷 사인이 떨어지자 상대배우인 황정민과 금방 찍은 장면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감기에 걸려 안쓰럽게 기침을 하고 있지만 첫 영화에 대한 열정만은 두눈 속에 가득하다.

100% 핸드헬드로 빠르게 촬영되는 영화라 현장에서 가장 안쓰러워 보이는 사람은 촬영감독. 연신 땀을 쏟으며 촬영에 임하는 중이다. 이윤기 감독은 “완만한 시나리오 속에서 흔들리고 변화하는 감정들을 잡아내기에는 핸드헬드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 정혜>는 현재까지 절반가량의 촬영이 진행되었고 7월27일에 크랭크업 예정이다. ‘당신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여자, 정혜’가 상처를 극복하고 갑자기 찾아온 사랑을 조심스럽게 키워가는 여정은 내년 봄에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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