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는 이런 사필귀정, 일벌백계의 호러 리메이크가 아니다. 환자 지수(김혜수)는 물론이고 의사 석원(김태우)에게 감당하지 못할 상처와 사연을 비슷하게 안겨주고 절대고독에 빠진 그들끼리 또 한번 물고 물어뜯게 만든다. 석원은 가해자이기에 앞서 슬픈 영혼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지수는 피해자이기에 앞서 미쳐갈 수밖에 없는 슬픈 사랑의 포로이어야 한다. 그들을 둘러싼 관계들 역시 그 연쇄망의 한 고리를 꿰어야 한다. 석원의 아내와 또 다른 환자들, 지수의 남편과 옛사랑이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례로 나서서 모질고 처참한 비밀의 순간들을 연출해야 한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은 충족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고, 다만 서로를 파괴할 뿐이다. 영화는 그 파괴의 순간들을 길고 긴 미스터리로 엮어내려고 한다. 그러니 옛 TV드라마의 에로틱한 공포를 기억하거나 기대하는 이들에게 이 사연들은 너무나 긴 도입부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넋두리다. 거꾸로 감독에게는 TV드라마의 단순한 공포 구도가 사랑의 이기적, 일방적 행로를 끌어가는 모티브이자 마침표일 뿐이다. 이 간극은 너무 멀어 ‘화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먼 거리를 메워줄 수 있다면, 그건 매혹적인 이미지들이다. 단락조차 없이 빼곡한 소설 쓰기로 영혼의 불안과 갈증을 해소하려고 하는 지수의 안간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오는 정신분열의 위기. CG를 활용한 이 첫 시퀀스는 소름끼치게 매혹적인 이미지의 연속이다. 이 이미지가 위태로워진 석원에게도 똑같이 반복되지만 그 위력은 시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