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장화, 홍련> <스캔들>의 영화음악감독 이병우 [2]
2004-08-04
글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조동익과 함께한 ‘어떤날’은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친 듀오이다.

어떤날의 첫 앨범이 1986년에 나왔으니 벌써 근 20년 전 이야기가 된다. 사실 내가 뭘 만들어도 당시에는 그게 별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몇년 뒤에나 피드백이 오곤 했으니까. 어떤날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후문이나 마니아층이 있었다는 소식을, 유학 시절 혹은 그뒤에 가끔 들었을 뿐이다. 사실 어떤날은 적극적인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 둘이 시작한 것도 라이브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음악을 스튜디오에서만 하자는 취지가 강했다. 이는 우리 둘의 내성적인 성향 탓이기도 하다.

많은 음반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혹은 프로듀서로 참여했는데, 힘들지 않았는가.

다 재미있었다. 너무 양이 많아지면 힘들어지긴 했지만…. 아쉬운 측면도 있다. 내가 많이 부족해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미지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그간 꾸준히 다섯장의 연주 앨범을 발표했는데 4집 <야간비행> 뒤에 독집 앨범 5집 <흡수>를 내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언가 새로운 걸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은 제대로 준비가 안 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녹음은 3일 했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삼십구년’ 걸렸다.

그렇다면 연주 앨범 중 가장 분수령이 된 음반으로 5집을 꼽을 듯한데? 새로운 테크닉도 들리고….

5집이 기존 음반과 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렉트릭 베이스 슬래핑 기법은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였을 뿐이다. 나름대로 동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고.

예전의 영화음악을 음반화할 생각은 없는가.

일부러 영화음악 음반을 내고 싶지는 않다. 1996년 첫 작품 <세 친구>와 <그들만의 세상>은 미국 유학가기 전에 참여했다. 유학 다녀와서 <스물 넷>을 했고. 이 작품들은 극소량의 음악이 들어갔는데 이것저것 모아 음반을 내는 건 좀 안 좋아 보여서 내지 않았다.

왜 <장화, 홍련> 영화음악 음반 발매가 늦었는가.

<장화, 홍련> 음반은 1년도 넘은 시점에 발매되는 것인데, 사실 말은 안 된다. (웃음) 당시 스케줄이 밀려서 시간이 얼마 없었고 그래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음반을 만들 시간도 부족했다. 여러 작품을 모은 선집을 낼까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김지운 감독의 작품만을 골라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두 작품을 모았다. 발표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7월24일 일본 개봉 시점에 맞추게 되었다. 음반 발매는 23일에 한·일 동시에 발매한다. <스캔들…> O.S.T도 일본의 소니 레이블에서 나왔다.

△ <장화, 홍련> O.S.T와 이병우가 참여했던 영화들.

호러영화는 의외인데(게다가 두편 다 김지운의 작품이다).

그런가? 원래 새로운 시도를 좋아한다. 막역한 사이였던 김지운의 제안이어서 어릴 때부터 같이 꿈꾸었던 것도 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주위의 평이 좋아서 다행이다.

이번 음반이 영화 개봉시의 음악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리고 영화음악에 참여한 이들을 소개해 달라.

신이경이 피아노를, 강경한이 사운드 이펙팅을 해준 것은 예전과 비슷하다. 오케스트라가 참여했고. 추가된 곡으로는 주멜로디에 보컬을 입혀 노래로 만든 <자장가>가 있다. 노래는 장재형이 불렀는데 요즘 같이 작업하는 친구다. 그는 I.D.라는 팀에 강경한과 함께 있다. 강경한은 미국에서 만났고 장재형도 뉴욕에서 공부했다.

메인 테마 <우는 달>에 대해.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언니 수미가 현실(동생의 죽음)을 재인식하는 장면 뒤로 달이 뜨는 장면이 이어진다. <우는 달>은 그곳을 위한 음악이었는데 여러 버전으로 편곡, 변주해 영화의 여러 곳에 쓰였다.

<메모리즈>는 단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율적인 음악도 별로 없는 듯하다. 영화의 일부인 듯한 음향 위주로 들리고. 잠깐 흐르는 피아노 음악이 아름답던데….

그 곡은 <눈물>일 거다. 그런데 나머지 음악들은 이상하게 들려서 그렇지 대부분은 기타로 만들어진 곡들이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것과 개인 연주 음반을 만드는 것은 어떤 점에서 다른지.

다 재미있다. 영화는 이미지와 스토리를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 재미를 줄 뿐더러 음악이 영화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 그것을 음악으로 청각화시키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솔로 연주 앨범 작업은 나의 상상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옮기는 것인데 반해 영화음악 작업은 감독이나 타인의 의견이 중요하다.

감독에게 맞추려면 스타일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이재용 감독은 무척 꼼꼼한 스타일이다. 감정을 오버하지 않고. 김지운 감독은 다소 감정의 오버가 있지만 마찬가지로 꼼꼼하다. 음악을 잘 이용할 줄 안다. 반면 이성강 감독은 자유롭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스타일이 어떻든 모두 자신의 의견은 강하다.

<마리 이야기>의 영화음악을 맡게 된 것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호감 때문이라고 했는데 어떤 종류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가.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영상화 전에 작곡한 작품이, 후일 영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당연히 그런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상세한 기억을 하기는 어렵다. 영화음악 작업이 참으로 정신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화 편집도 그렇지 않은가. 음악이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음반을 녹음할 때 몇 트랙을 사용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지.

주로 라이브 녹음을 한다. 한번에 녹음하는 걸 선호하니까. 그래서 트랙도 많이 안 쓴다. 기타 연주 음반의 경우는 3트랙이면 된다. 2일, 길어봤자 5시간씩 3일 녹음한다. <스캔들…>의 경우 오케스트라 부분은 6시간 녹음했다. 그뒤 더빙하고 편집하는 후반 작업까지 총녹음은 2주 소요된 듯하다. <장화, 홍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실은 준비과정이 더 길다. 준비과정까지 합하면 영화음악을 만드는 데 모두 두달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무직도르프는 언제 왜 설립되었는가.

2000년 10월, 유학 다녀온 뒤 만들었다. 처음에는 음악만 맡은 나 이외에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1년에 한장 나오는, 수익성 없는 레이블을 운영하기 쉬웠겠는가. 투자 대비 수익 부분은 안 맞는 측면이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여기 음악인들은 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사람들의 음악은 빛날 것이다. 설립 목적이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동시대적 음악을 만들고 싶다. 단, 연주 음악이었으면 한다. 이유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모르니까. 이쯤 말하면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음악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응이 좋다. 일본쪽에서 특히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지만. 나의 팬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 성향을 가진 이들일 테니. (웃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영화는 찾았는가.

올해만도 7편을 못한다고 했다. 장르는 상관없지만 마음에 와닿는 걸 할 것이다. 이제 영화음악 작업이 어려운 작업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코믹영화를 중도하차해버린 적이 있다. 코믹영화는, 언젠가 한번 더 해봐야 알겠지만 나에게 잘 안 맞고 좀 다르더라.

앞으로 어떤 음악을 발표할 예정인가? 혹시 노래할 생각은 없는지.

얼마 전 내가 프로듀스한 브라이언 슈츠의 피아노 앨범을 무직도르프에서 발매했다. 지금은 <장화, 홍련>을 위해 일한 두 친구 강경한과 장재형의 팀 I.D.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소음도 많고 시끄러운 일명 ‘인더스트리얼 얼터너티브’ 음악으로 나의 느낌과는 반대의 작품이 나올 것이다. 신이경 솔로 앨범은 가을쯤 나올 것 같다. 신이경의 피아노와 나의 일렉트릭 기타 듀오 작업도 예정 중인데 ‘언젠가’ 나올 것이다. ‘언젠가’라고 한 건 구체적인 날짜를 밝히면 독자들이 그때 나올 것이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웃음) <흡수>의 경우에도 공개한 날짜에서 1년 뒤에서야 나왔다. 한 가지 더. 11월12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무직도르프 페스티벌을 한다. 그전에 신이경과 음반을 내면 좋겠는데… 노래? 하하. 부를 생각이 없다. 젊을 때야 자작곡으로 한번 불러볼 수 있는 것이지만….

요즘 듣는 음악은.

<장화, 홍련> O.S.T. 혹시 잘못된 게 없나 살펴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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