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고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대학로에 갔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자살한 뒤에도 교정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 효신 역을 맡았던 박예진(20)도 근황이 궁금한 친구였다. 회색 후드티를 걸치고 화장기 없는 뽀얀 얼굴로 서성이던 1년 전과 달리 스튜디오를 찾은 박예진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긴 코트를 입고 나타난 그의 눈언저리는 보라빛이었고, 말수 또한 적었다. 소리내서 웃지 않으면 소녀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저요. 사실 <여고괴담…> 찍고 나서 몸도 마음도 내내 아팠어요. 매일 울었던 것 같고. 효신과 이젠 이별이구나 하니 아쉬움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여고’를 맴돌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가 택한 두 번째 작품은 <광시곡>. 영화는 독자적인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는 특수부대가 국가기밀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액션이나 특수효과가 주를 이루는 터라 시각장애인이자 특수부대원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강지영은 “양념 같은 역할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박예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제3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갈등을 증폭시키는 인물”이라는 것. 지난해 가을께 <광시곡> 촬영을 마치고 박예진은 첫 단편영화 나들이를 하기도 했다. 뭘 얻겠다고, 꼭 해보겠다고 작정하고 덤벼든 것은 아니었다. “EBS 단편영화극장에서 <광대버섯> 반토막을 본 게 전부”였다는 그는 지난해 10월, 우연찮게 이 단편영화를 연출한 염정석 감독의 <희망>에서 노란 가발 쓰고 버스터미널을 돌며 몸파는 여자 역할을 맡았다. “속초에서 이틀 동안 찍었어요. 그런데 단편영화라는 게 긴 시나리오 중 한 부분을 싹둑 잘라서 보여주는 것 같아 찍고 나서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열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나눈 즐거움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품긴 했지만, 데뷔 전까지 주위 친구들의 핀잔이 두려워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는 박예진의 꿈은, 여전히 ‘배우’다. 기본부터 든든히 다져놓고 싶어 지난해 중앙대 연극학과에 입학하기 했지만 1학기만 다니고 일정 때문에 휴학한 상태라 뒤쳐질지 모른다는 ‘조바심’도 드는 눈치다. “코가 좀더 오똑했으면 좋겠어요. 광대뼈도 너무 불거졌고” 외모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때면 ‘여전히’ 신인이지만, “혹시 카메라로 찍고 싶은 게 있냐”는 질문에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다르게 반응하는 한 사람의 하루를 담고 싶다”고, “일상은 그렇게 모순투성이잖아요. 사실 제가 그래요. 내 모습을 찍고 싶어요”라고 덧붙이는 걸 보면 쉽사리 혹독한 ‘배우수업’을 포기할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