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연기는 그냥 익숙해지는 것!”, <제브라맨>의 아이카와 쇼
2004-08-05
글 : 박혜명
사진 : 이혜정

주연만 100편, 일본 V시네마의 간판스타 아이카와 쇼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미이케 다카시의 <제브라맨>은, 배우 아이카와 쇼의 100번째 주연작이다. 그는 1990년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의 V시네마 <네오친피라: 데포다마>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10년 동안 90편 이상의 주연작을 찍었을 만큼 V시네마의 오랜 간판 스타. 이마무라 쇼헤이, 구로사와 기요시, 야마다 요지 등과 작업하며 극장용 영화의 출연도 병행했던 연기파 배우. 15년간 14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해온 놀라운 사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엔 “365일 내내” 촬영 스케줄이 있었다는 아이카와 쇼는, 일본 내에서도 보기 드물게 ‘언제나 쉬지 않고 일해온’ 배우다.

소심한 40대 가장의 엉뚱한 판타지를 짐작할 수 없는 스토리로 이끌어가는 블랙코미디 <제브라맨>에서도 그렇지만, 미이케 다카시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나 구로사와 기요시의 <네 멋대로 해라> 등 본인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영화들에서 아이카와 쇼는 영화 속의 캐릭터 그 자체로 보여진다. 야쿠자 역을 주로 맡았던 V시네마들 속에서 그는 진짜 야쿠자보다 더 야쿠자 같은 에너지의 덩어리가 된다. 배우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닐 것 같은 아이카와 쇼는 자기 연기에 대한 철학 또는 자의식을 비우고 산다. “그런 건 깊이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난 1년에 300일을 현장에 있는데, 일단은 익숙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이런 거다. 처음에 대본을 받으면 ‘아, 이런 역할이구나’ 한다. 그런 다음 현장에서 다시 한번 대본을 본다. 그리고 책을 닫고 바로 연기를 한다. 1년 중 300일을 이렇게 지내니까 연기란 어떤 것이다, 라고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익숙해지는 것이다. 곡괭이만 옆에 있으면 바로 일에 뛰어드는 막노동 일꾼처럼.” 막노동 일꾼이 막노동을 즐겨서 그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 막노동 일꾼은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을 위해, 최소한의 체력을 오늘 아껴둔다. “나는 내가 다작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월급쟁이 회사원이 아니라 일한 만큼 돈을 받기 때문에 그게 너무 좋다. (웃음) 1년에 300일 이상을 못하는 것도, 그 이상 하게 되면 체력이 달려 죽을 것 같아서다. 난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더 일하고 싶다.”

아이카와 쇼는 84년 7인조 그룹 ‘잇세후미 세피아’를 결성해 5년간 가수로 활동하다가 89년 TV드라마 <돔보>에 출연하면서 삶의 길을 꺾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없이 배우가 된 아이카와 쇼는 “한편 찍고 나면 바로 다음 영화에 들어가는” 닛카쓰사의 제작 시스템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그는 매번 ‘이게 마지막이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정식으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서 대사를 외우는 방법조차 몰랐던 아이카와 쇼는, 아무 생각과 편견없이 대본을 봤을 때 느낀 그대로 연기에 충실했다. 연기에 대한 자의식을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그는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말하기보다 일본인만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말했다. “일본인만이 할 수 있는 3대 역할이라는 게 있다. 야쿠자, 가미카제, 사무라이. 어느 누구도 이 세 가지에 대해선 진실을 모르지만, 일본 배우라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역할을 해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야쿠자 역할을 많이 했지만 내가 야쿠자는 아니다. (웃음)” 맞다. 아이카와 쇼는 야쿠자가 아니다. 대신 그는 그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아이카와 쇼가 야쿠자라고 믿게 만든다. 누구보다 많은 영활 찍었고 누구보다 많은 시간 연기했지만 누구보다 영화와 연기에 대해 말을 아끼는 그는, 아이카와 쇼가 배우임을 말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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