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몬스터>의 리와 셀비
2004-08-06
글 : 정이현 (소설가)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사랑은 권력관계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다. 더 사랑하는 쪽이 언제나 지게 되어 있는 불평등한 게임이 사랑이다. 꼭 남녀관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보다 더 일방적인 관계는 흔치 않다), 국가와 국민의 사랑(한쪽이 다른 한쪽의 사랑을 자꾸 시험하려고 든다), 팬과 스타의 사랑(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는 경우가 꽤 흔하다)의 실례에서 볼 수 있듯 이 세상 여러 종류의 사랑 안에 파워게임의 속성이 잠복돼 있다. 여자와 여자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몬스터>의 두 여자는 연인 사이다. 남들은 그들은 레즈비언이라고 부른다. 리는 셀비를 사랑한다. 그야말로 죽도록 사랑하면서 모든 것을 다 바친다. 물론 셀비도 리를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사랑의 무게는 가볍고 사랑의 표정은 가변적이다. “우리는 돈이 하나도 없는데, 나는 밥을 굶고 있는데, 너는 왜 매춘을 하지 않는 거야” 라고 자못 천진하게 묻는 것이 셀비의 사랑법이다. 하긴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도 셀비는 리에게 “날 책임질 수 있지” 라고 말했었다. “널 책임질게. 행복하게 해줄게. 나만 믿어, 제발.” 사랑의 약자는 이렇게 절규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을 모른다.

여자와 여자의 사랑도 영원한 승자가 없는 불평등한 파워게임임을

현재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리와 셀비의 두 타입 중 어느 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 치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공정하고 평등한 우리 사랑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흥분하는 분들께는, 흠흠,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스스로의 행운에 감사하면서 쭉 행복하게 사시기를. 모르는 게 약이나니.) 조금 더 사랑하는 쪽에서 참지 않으면 둘의 관계가 끝장나 버릴까봐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사랑에 관한 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권력관계는 결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둘 앞에 펼쳐지는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강자와 약자는 서로 그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법정에 선 셀비가 제 생존을 위해 손가락 끝으로 리를 지목했을 때 죄수복을 입은 리는, 셀비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인다. 딱 한 번, 아주 작고 희미한 동작이다. 미친 듯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는 순간, 리는 그렇게 사랑을 완성한다. 이제 모든 것은 셀비의 몫으로 남겨졌다. 둘의 관계에서 늘 조금 덜 사랑하는 듯 보이던 셀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사랑을 이용하는 듯 보이던 셀비. 그는 사랑의 강자였을 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약자였다.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분명히 ‘거는’ 쪽이 더 아프다. 그렇지만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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