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몰래 숨어 피우는 모녀의 사정, <흡연 모녀> 촬영현장
2004-08-09
글 : 김수경
유은정 감독의 단편영화 <흡연 모녀> 촬영현장

“진짜로 피워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초등학교 3학년(극중 7살, 영희 역) 재희. 라이터를 켜는 데 잠시 애를 먹더니 이내 불을 붙이고, 능숙한 솜씨로 연기를 뿜어댄다. “영종아 좀더 세게 빨아들여야지, 재희처럼.” 상대역인 영종이가 연기를 제대로 못 내뱉자 이어지는 스탭들의 응원. 7∼8평 남짓한 효창동 빌딩 지하실은 어린 두 배우가 피운 금연초 연기로 자욱하다.

이스트만 코닥 사전지원작인 단편영화 <흡연 모녀>는 서로 몰래 담배 피우는 엄마와 일곱살 딸의 이야기. 유은정 감독의 전작 <무한증>에서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소심한 여주인공은 <흡연 모녀>에서 거울 앞에서 마릴린 먼로 흉내를 내며 당당하게 담배를 빼어무는 여자 악동으로 변신했다. 촬영장인 지하실로 들어서자, 창틀 사이로 두대의 HMI 조명기가 지하실 실내를 낮처럼 환하게 비춘다. 낡아서 부스러질 것 같은 창문의 팬, 얼룩진 원형 거울과 부서진 벽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재희야. 예쁜 얼굴이 졸린 눈으로 가려지지 않도록 힘내야지.” 미모와 ‘먹을 것’에 유난히 약한 여배우를 어르는 유 감독의 연기지도. 한밤중 지나서야 오늘 촬영의 최대 고비인 키스장면이 준비된다.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지하실 입구부터 레일이 깔리고 크레인숏이 준비된다. 조명 세팅 변화와 리허설이 수차례 계속되고 무지개천 소파에는 아이들이 거꾸로 누웠다가 바로 앉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떨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재희는 “남자친구도 있는데 감독님이 키스신을 시켜서 곤란하다”고 대답한다. 유 감독이 두 아이에게 “지문이 어떻게 되어 있지?”라고 묻자, 아이들은 곧바로 “싫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입을 모아 답한다. 드디어 숏. 재희가 영종이를 설득하는 대사. “원래 사랑하는 어른들은 키스할 때 서로 혀를 빠는 거래.” 두려움에 거부하는 영종이의 대사. “누가 그래, 더럽게….” 반사판으로 촬영장 입구를 가리고 최소한의 촬영인원으로 진행된 ‘설왕설래’가 막을 내리자 재희가 영종이에게 농담 한마디를 던진다. “다음에는 이 좀 더 깨끗하게 닦아.” 이 당돌한 영희를 상대하는 엄마 역은 <살인의 추억>에서 마지막 생존자 역으로 열연했던 배우 서영화가 맡았다. <흡연 모녀>는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에 출품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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