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반헬싱>,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08-10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마구 뒤섞인 전율 공포 멀어지는 ‘시대적 공포’

데이비드 스칼이라는 뱀파이어 마니아는 〈뱀파이어를 위한 V〉라는 컬트 책에서 뱀파이어 이미지에 대한 대중들의 중독증세는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를 자문하며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하고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인기 있던 노래가 바비 “보리스” 피켓의 ‘괴물 매시’라는 곡이다. 거기엔 미친 과학자와 인간이 창조한 괴물들, 또 늑대인간들과 무덤을 파헤쳐 송장을 파먹는 귀신, 그리고 어김없이 뱀파이어가 등장했다. 대중문화 안에 이러한 괴물들이 종횡무진 출현해 인간세계에 살육의 추문이 퍼질 때, 그것은 어떤 시대의 불온한 위기, 또 동시에 그 위기를 초인적으로 넘을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다.

각종 흡혈귀를 통칭하는 뱀파이어나 동유럽 트란실바니아의 전설적인 ‘피의 백작’ 드라큘라와 그에 희생당하거나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국 지배와 복속, 그리고 저항과 전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결국 피! 피! 피! 피를 부르는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에서 드라큘라가 뿜어내는, 타락한 귀족적 카리스마는 역으로 계급 전복의 팬터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1931년작 〈드라큘라〉에서 벨라 루고지가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은 이성애적 에로티시즘을 휙 비껴간다. 또 프랜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는 에이즈 시대의 공포를 만화경처럼 펼쳐낸다.

〈반 헬싱〉은 이런 드라큘라의 서사 역사와 다른 괴물들을 뒤범벅(매시)한다. 그러나 위에서 잠깐 언급한 ‘괴물 매시’라는 노래가 맺었던 시대와의 직접적 관련성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애타게 관계하려는 것은 다른 판타스틱 영화에서 형성된 스타 이미지와 장르들이다.

돌연변이들과 인간의 싸움을 다룬 〈엑스 맨〉 시리즈에서 돌연변이 늑대 인간 역을 맡고 있는 휴 잭맨이 주인공 반 헬싱 역을 하고 있다. 또 순수 혈통의 드라큘라 아버지 대역에게 도전하는 인간 혈통의 뱀파이어 역을 〈언더월드〉에서 맡았던 케이트 베켄세일은 뱀파이어 송곳니를 어느새 밀어 넣고, 오히려 뱀파이어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반면,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흡혈귀를 추적하는 과학자 애이브러햄 반 헬싱의 이름이 가브리엘 반 헬싱으로 바뀌어 있다. 그런가 하면 대영 제국에 도전하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헬싱기관이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헬싱〉에 대한 참조도 보인다.

거기다 반 헬싱이 각종 신종무기를 증여받는 장면은 ‘007’ 시리즈에 대한 인용이다. 기존의 드라큘라 시리즈와 구분되는 〈반 헬싱〉의 호감 가는 지점은 드라큘라의 성이 위치한 트란실바니아 주민들과 드라큘라 무리의 싸움이다. 반 헬싱이 교황청에서 특파된 뱀파이어 사냥꾼이라고 한다면, 케이트 베켄세일이 맡은 역의 안나라는 인물은 트란실바니아의 귀족으로 주민들과 함께 마을에 출몰하는 뱀파이어들과 맞서 싸운다. 다른 드라큘라 영화에서 드라큘라 성 주변의 주민들이 방어능력이 전혀 없이 피를 바치는 희생자로 그려지고, 외지에서 온 사냥꾼이 나 홀로 영웅이 되는 데 비해, 〈반 헬싱〉은 주민들의 필사적인 자구책에 관심을 둔다. 안나는 그들이 의존하는 여성이다. 드라큘라 전설이 원래 주민들의 피를 말리며 착취하던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위와 같은 변용은 원전 문맥으로의 환영할 만한 귀환이다.

여기에 〈반 헬싱〉은 드라큘라의 신부들에게 천사와 같은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데, 이들이 흰 날개를 펴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마을 위를 배회하며 나는 장면은 전율스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워낙 이것저것을 맥락없이 뒤섞다 보니, 이 영화가 기대고 있음직한 시대적 공포는 어느새 멀어진다. 즉, 영화 속에서 드라큘라는 자기 종족의 대량 복제를 감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디엔에이(DNA) 복제기술에 의한 인간 대량생산이라는 시나리오에 얽혀 있는 두려움을 드라큘라 대량 생산으로 치환시킨 것이다. 그러나 저 장면을, 저 인물을 어디서 봤더라 하고 중얼거리는 사이 시대적 공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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