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곳에 분노는커녕 한도 모르는 어리버리한 처녀귀신 송이(임은경)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혼미해진다. 영화는 후반부, ‘시실리’로부터 다시 2km 떨어진 ‘천사의 집’으로 무대를 옮긴다(오프닝에서 언뜻 보여지는 표지판에는 ‘시실리 2km, 천사의 집 4km’라고 적혀 있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쫓겨온 양이는 폐허가 된 천사의 집에서 참혹한 과거를 지닌 송이와 함께 귀신 감정교육에 돌입한다. 여기서 약간의 로맨스와 애절한 드라마가 추가되고, 영화는 그녀의 착한 인과응보 복수극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시실리와 천사의 집 사이에는 지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태도의 거리가 있다. 물론 송이는 가장 사랑스러운 귀신으로 기억될 것이며, 여전히 정교한 유머는 능청스럽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장르적 요소들을 횡단하려는 의욕으로 2km를 움직인 영화는 긴장을 상실한 채 비틀거린다. 후반부는 전반부와 연결되지 못하고, 옴니버스영화의 두 번째 에피소드처럼 서성거린다(‘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시실리에 정의로운 시간을 되찾아주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펑키호러’라는 신종 장르를 표방한 <시실리 2km>는 호러·스릴러·액션·코미디·멜로·드라마·판타지를 경쾌하게 뒤섞으며,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들을 슬며시 뒤집는다. 조폭은 잔혹한 동시에 다정하고, 귀신은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어눌하다. 또한 동네 주민들은 순박한 시골 주민의 이미지와 매치되지 않지만 교활하다고 하기에 너무 단순하다. 이처럼 2km의 간격을 두고 산만하게 움직이면서 영화는 장르의 속성인 감정과잉으로부터 벗어난다. 동시에 그 길에서 휴대폰과 060 폰팅 서비스, 고장난 공중전화를 불러들이며, 점점 판타지처럼 되어가는 장소에 대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