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스테레오 타입의 깜찍하고 능청스러운 전복, <시실리 2km>
2004-08-10
글 : 김혜영 (영화평론가)
장르의 무절제한 횡단과 스테레오 타입의 깜찍한 전복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훔쳐 도주하던 석태(권오중)는 교통사고로 인해 평화로운 산골 시실리로 흘러든다. 그러나 곧 예기치 않은 사고로 질식사하고, 그의 콧구멍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마을 주민들은 석태를 벽에 묻는다. 한편, 양이(임창정)는 휴대폰 위치추적 서비스로 석태의 행방을 찾아 ‘동생들’을 이끌고 시실리에 온다. 이제 이 조용한 마을은 ‘석태’, 다른 말로 ‘다이아몬드’를 들키지 않으려는 마을 주민들과 석태를 기어코 찾고야 말겠다는 양이파의 격전지로 변한다. 영화는 마을 주민들과 양이파를 교차편집함으로써 공포와 유머, 긴장과 이완 사이를 우아하게 오간다. 화면분할 또한 욕망의 이상동몽, 또는 동상이몽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곳에 분노는커녕 한도 모르는 어리버리한 처녀귀신 송이(임은경)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혼미해진다. 영화는 후반부, ‘시실리’로부터 다시 2km 떨어진 ‘천사의 집’으로 무대를 옮긴다(오프닝에서 언뜻 보여지는 표지판에는 ‘시실리 2km, 천사의 집 4km’라고 적혀 있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쫓겨온 양이는 폐허가 된 천사의 집에서 참혹한 과거를 지닌 송이와 함께 귀신 감정교육에 돌입한다. 여기서 약간의 로맨스와 애절한 드라마가 추가되고, 영화는 그녀의 착한 인과응보 복수극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시실리와 천사의 집 사이에는 지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태도의 거리가 있다. 물론 송이는 가장 사랑스러운 귀신으로 기억될 것이며, 여전히 정교한 유머는 능청스럽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장르적 요소들을 횡단하려는 의욕으로 2km를 움직인 영화는 긴장을 상실한 채 비틀거린다. 후반부는 전반부와 연결되지 못하고, 옴니버스영화의 두 번째 에피소드처럼 서성거린다(‘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시실리에 정의로운 시간을 되찾아주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펑키호러’라는 신종 장르를 표방한 <시실리 2km>는 호러·스릴러·액션·코미디·멜로·드라마·판타지를 경쾌하게 뒤섞으며,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들을 슬며시 뒤집는다. 조폭은 잔혹한 동시에 다정하고, 귀신은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어눌하다. 또한 동네 주민들은 순박한 시골 주민의 이미지와 매치되지 않지만 교활하다고 하기에 너무 단순하다. 이처럼 2km의 간격을 두고 산만하게 움직이면서 영화는 장르의 속성인 감정과잉으로부터 벗어난다. 동시에 그 길에서 휴대폰과 060 폰팅 서비스, 고장난 공중전화를 불러들이며, 점점 판타지처럼 되어가는 장소에 대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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