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하드> 같은 액션영화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다.” 자주 맡던 로맨틱한 캐릭터와 동떨어진 <언더월드>의 배역을 왜 맡았냐는 질문에 대한 케이트 베킨세일의 답변이다. 과감한 승부수였던 <언더월드>의 셀린느 역은 그녀에게 행운을 몰고 왔다. <언더월드>를 연출한 렌 와이즈먼과의 재혼, <언더월드> 후편의 기획, 그리고 <반 헬싱>의 안나 발레리우스 역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반 헬싱>의 안나 역은 케이트 베킨세일에게는 바둑으로 치면 ‘복기’에 가깝다. 늑대인간과 흡혈귀의 대결구도, 악을 일깨우는 동력이 되는 인물을 둘러싼 쟁탈전, 주인공이 괴물사냥꾼이라는 것 등 <언더월드>와 <반 헬싱>은 유사한 설정이나 겹치는 캐릭터가 많다. 다만 무대 중심에 휴 잭맨이 서 있다는 점은 예외지만 말이다. 타이트한 가죽의상을 걸치고 주윤발과 트리니티의 퓨전을 연기하는 <언더월드>, 고공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몸을 내던지는 <반 헬싱>을 통해 그녀의 우아한 ‘공주님’ 이미지는 말끔히 세탁되었다.
케이트 베킨세일의 얼굴은 표정에 따라 니콜 키드먼과 줄리아 로버츠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다. 사랑에 속고 순정에 우는 기존 이미지를 전복시킨 <언더월드>와 <반 헬싱>의 여전사 캐릭터의 생성도 여기서 출발한다. 미간을 중심으로 코와 눈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다. 그래서 얼굴을 찌푸리거나 이를 앙다물면 매우 강한 인상으로 돌변한다. <반 헬싱>에서 그녀가 인상을 쓰면 미간에 ‘11’자가 새겨진다. 이럴 때 옆얼굴에 나타나는 그녀의 눈매는 매우 날카롭고 입 주위 근육의 움직임은 미묘하다. <진주만>에서 그를 발탁한 제리 브룩하이머는 “케이트는 예민함과 품격을 동시에 지녔다. 그것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드라마와 유머를 넘나든다. 수년 전의 멕 라이언을 보는 것 같다”고 평했다.
미래의 지나 데이비스 혹은 캐서린 헵번을 꿈꾸는 그녀는 배우 집안에서 자라났다. 어머니 주디 로는 영국 TV드라마와 시트콤에서 활동했다. 아버지 리처드 베킨세일은 아주 유명한 TV코미디언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그녀가 어렸을 때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런던에서 보낸 그녀의 소녀 시절은 연기와 문학 사이를 가로지른다. 10대 시절 스미스서적이 주관한 젊은 작가공모에 시와 단편소설로 두 차례 당선된다. 이후 드라마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학에서 불문학과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세렌디피티>에서 특유의 영국 악센트로 두운(頭韻)을 만들어내며 “플레밍, 페니실린”이라고 대사를 읊조린다. 또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운명을 시험하는 이 영화의 속 낭만적인 모습은 그녀의 ‘소녀시대’가 반영된 자화상이다. 영화쪽에서 그녀의 연기가 시작된 계기는 대학 1학년 때 참여한 케네스 브래너의 <헛소동>이었다. 2년 뒤 그녀는 연기를 위해 대학 3학년을 마지막으로 과감히 병행하던 학업을 포기한다. “자신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노예가 가장 예속적인 노예다”라고 단언하듯이 그녀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다.
샤를리즈 테론이 <스위트 노벰버>로 돌아서는 바람에 전격 ‘대타’로 기용되어 20만달러 개런티로 열연한 첫 대작영화 <진주만>은 이제 아련한 추억거리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작품은 다시 그녀가 큰 폭의 변신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케이트는 마틴 스코시즈의 신작 <비행사>(The Aviator)에서 에바 가드너 역을 맡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하워드 휴스의 프로포즈를 단칼에 거절하고 프랭크 시내트라에게 달려간 전설의 여배우가 그녀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비행사>는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될 예정이다. 다섯살 여자아이 릴리의 엄마, 73년생 이 여배우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