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 시리즈의 개성을,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전작 <블러디 선데이>가 100% 입증한 두 가지 장기, 현장감과 뚝심으로 살려낸다. 카메라와 편집은 관객이 제이슨과 함께 실시간으로 정보를 종합하고 판단하도록 재촉하고, “정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던 <블러디 선데이>의 결기 비슷한 에너지가 이 장르영화를 관통한다. 핸드헬드와 스테디캠으로 영화 대부분을 찍은 <본 슈프리머시>는 일부 관객에게는 시신경의 피로를 유발할 법하다. <본 슈프리머시>는 대륙간 여행을 불사하고 유럽 공동체 안에서도 끝없이 움직이며 편집은 영화를 미분한다(맷 데이먼까지 있으니 또 다른 기행 스릴러 <리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동승자의 시점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즐길 만한 요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관객을 조수석에 결박하고 기어코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두번의 졸도할 만한 카 체이스에서도 그렇다. <빌리지 보이스>가 ‘안티블록버스터’라는 표현까지 동원한 <본 슈프리머시>의 미학적 전략은, ‘통제된 생동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심히 디자인된 ‘들고찍기’는 폭력과 감정을 직접 연결하고, CGI의 불기둥보다 훨씬 심장을 조인다. 폴 그린그래스는 통상 스타일의 추방으로 여겨지는 시네마 베리테식 카메라워크가 얼마나 강렬한 장르적 양식일 수 있는지 입증했다.
액션의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숨을 고를 즈음에 본은 한 여자를 만난다. 007 영화라면 새 본드걸이라도 소개하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고해성사다. 고해로는 저질러진 일을 지울 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지만 어쨌거나 본은 그렇게 한다. 살아 있는 한 그는 군중 속에 숨어서 걸어야 하고, 군중을 벗어나면 달려야한다. 그러나 추격과 도주가 끝났을 때 그는 어디로 갈 것인가. 제이슨 본 시리즈가 우리의 공감까지 얻어낸다면 그것은 강요당한 여행자 본의 과로한 얼굴 때문일 것이다. <본 슈프리머시>의 여운은 시대착오적으로 멋있는 남자와 만나 진지한 데이트를 한 느낌과 흡사하다. 핸섬한 오락영화가 즐비한, 기억할 만한 여름이다.
:: 폴 그린그래스 감독 할리우드 진출기
“이 감독 안 쓰면 우리가 미친 거다”
<본 아이덴티티> 촬영 중 스튜디오와 마찰이 많았던 덕 라이먼 감독을 제작자의 의자로 물러앉힌 뒤 유니버설이 물색하고 나선 “새로운 피”에, <스티븐 로렌스 살인사건> <블러디 선데이>를 만든 48살의 반골 영국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그리 딱 들어맞는 인물은 아니었다. <본 슈프리머시>의 제작경과를 기사화한 〈LA타임스>에 따르면 그린그래스를 추천한 것은 1, 2편의 각본가 토니 길로이였다. 그의 제안에 어느 주말 <블러디 선데이>를 일제히 감상한 맷 데이먼과 제작자들은 “이 감독 안 쓰면 우리가 미친 거다”라는 결론에 동의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런던의 한 극장에서 관람했던 <본 아이덴티티>에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주류 미국 상업영화와 유럽 인디 감수성의 흥미로운 결합이라고 여겼고, 사실적인 정서와 반권위적인 캐릭터에 마음이 쏠렸다. “본은 슈퍼히어로나 만화 속 영웅과 다르다. 그는 첨단 기술이나 초인적 파워도 없는 거리의 남자다. 다만, 잘 훈련됐고 머리를 쓰는 남자다. 그의 내면에는 선량한 본과 옛날의 암살자 본이 공존한다.” 게다가 그린그래스는 영화경력에서 지금쯤 모험을 해야 할 때라고 느끼고 있었다. 양쪽의 이해는 맞아떨어졌고, 첫 번째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그린그래스는 예전의 동지 중 의상디자이너 디나 콜린만 데리고 왔을 뿐 1편의 배우, 제작자, 촬영감독, 조감독을 고스란히 물려받기로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앤서니 밍겔라, 케빈 스미스 등 유수한 감독과 작업해온 맷 데이먼은 폴 그린그래스가, 배우의 자연스런 움직임을 우선시하고 카메라를 거기에 종속시키는 구스 반 산트와 가장 비슷하면서도, 반 산트보다 더 의사소통을 중요시하는 감독이라고 인물평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