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X파일>의 한 장면처럼 시작하여 <엑스맨>의 주된 정조였던 소외의 멜랑콜리를 첨가시키며 진행되는 <헬보이>는, 블록버스터 팬들의 입맛과 코믹스 팬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절묘하게 배분하며 적절한 타협의 산물을 창출하였다. 전자는 악의 세력을 하나씩 스피디하게 처단해나가는 육중한 액션신들(영화 전편에 걸쳐 900여개의 CG가 사용되었음에도 육체와 육체가 직접 맞부딪치는 파열음이 들릴 정도의 사실성!)에 환호성을, 후자는 마이크 미뇰라의 원작에 비교적 가깝게 재현된 선 굵은 프로덕션디자인과 자기비하적인 음울하고 시니컬한 유머와 펄프한 감수성에 기꺼이 찬사를 바칠 것으로 예상된다.
“빛이 없는 곳에는 어둠이 득세하고, 또한 어둠 속에서만 득세하는 존재들이 있다. 우린 그에 맞서 싸운다.” 배트맨과 엑스맨(들)의 뒤를 잇는 우울한 영웅이자 ‘어둠에는 어둠으로, 악에는 악으로, 힘에는 힘으로’의 원칙에 충실한 안티히어로의 최절정 버전 <헬보이>는 아마 올 여름에 만날 수 있는 ‘가장 심란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일 것이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 이를테면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버전 <공공의 적>인 이 영화는 나쁜 놈으로서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심히 고뇌하는 주인공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관객에게까지 그 선택의 기로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 느끼는 ‘당연한’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악과 선 사이의 경계선이 얼마나 넘어서기 쉬운 것인가를 확인하는 순간의 희미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영화는 전형적인 인과응보 스토리의 틀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불합리하고 비틀린 비전을 심심치 않게 내보이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PS. 흥미로운 것은 ‘악’의 존재를 어떻게 실체화할 것인가에 관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특이한 취향이다. <크로노스>에서 영생의 기계 크로노스를 살갗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침으로 촉각화했고, <미믹>에서 얼굴은 인간이지만 몸은 날개 달린 괴생물체의 형태인 유다를 그 특별한 발소리로 형상화했던 델 토로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자신의 취향을 발휘했다. <헬보이>의 오프닝신과 라스트신에 한번씩 등장하는 절대악의 실체는 거대한 문어와도 같은 뭉클뭉클한 괴물로 표현된다. 일반적으로 절대악은 추상적인 ‘파워’이거나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무엇으로 제시되는 데 반해 <헬보이>에서는 강력한 충격을 받았을 때 산산조각날 수 있는 물질로 등장한다. 그것이 인간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공포보다 뭉클한 물질이 파괴될 때의 지나칠 만큼 선명한 ‘물질성’에서부터 비롯되는 소름이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헬보이>는 50년대 B급 괴물영화의 분명한 적자이다.
:: 영화화를 준비중인 마블코믹스, DC코믹스의 만화들
만화 주인공, 스크린을 습격하다
<배트맨> <데어데빌> <엑스맨> <헐크> <스파이더 맨>…. 코믹스의 영화화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듯한 요즘, 미국 코믹스계의 양대 산맥인 마블과 DC코믹스의 각종 캐릭터들이 앞다투어 대형 스크린에 진출하고 있다. 마블의 주인공들을 기용한 영화로는 <퍼니셔>(The Punisher)와 <강철주먹>(Iron Fist),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 <블레이드: 트리니티>(Blade: Trinity) 등이 있고, DC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로는 <캣우먼> <슈퍼맨> <원더우먼>이 대기 중이다. 그러나 좀더 어둡고 음험하고 복잡미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마블의 주인공들에 비해 선악의 경계가 훨씬 뚜렷하고 별다른 존재론적 고민이 없는 초인적 영웅상을 대변하는 DC코믹스의 주인공들이 스크린에서만큼은 확실히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피토프가 연출하고 할리 베리가 타이틀 롤을 맡은 <캣우먼>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편은 몇년째 무성한 소문만 날리면서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감독조차 아직 정하지 못한 <원더우먼>은 샌드라 불럭을 주인공 물망에 올려놓은 채 고심하고 있고, <슈퍼맨> 역시 <미녀 삼총사>의 McG만을 연출자로 확정한 채 주연급 캐스팅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