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은 잠시 까맣게 되지만, 곧 첫 장면이 반복된다. 마사키가 야구장 간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영화는 부감숏으로 먼지가 뿌옇게 이는 야구장을 보여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상 속에서 마사키는 이 모든 것을 상상한 것이다. 그렇지만 백일몽은 건조한 현실과 다르지 않다.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은 조금 비켜서서 어쩔 줄 몰라한다. 가끔 휑뎅그렁하게 펼쳐진 풍경 속에 그들은 어정쩡하게 놓여 있다. 무표정과 침묵은 얼어붙은 난처함이다. 세계가 더이상 그들에게 친절하지 않을 때, 오키나와의 바다 또한 생명과 정화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세계(일본)의 끝이자 극단적 상황이다. 폭력은 소리없이 몰아치고, 폭력에 맞서는 폭력으로 가학적 행위와 자기 파괴는 함께 간다. 그래서 세계의 과장된 폭력을 견디는 우에하라의 침착한 위악은 진정 비극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두 번째 영화 〈3-4*10월>은 흔히 기타노 영화의 원형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전의 영화를 원심력으로 해서 계속 나선형으로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움직임의 출발점은 캐릭터나 공간의 분할, 폭력과 유머의 결합, 생략의 미학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기차 안에서 말을 걸어온 낯선 남자와 함께 바닷가로 와버린 두 연인과 그 사이에 흐르는 침묵, 또는 같이 싸우다가 야쿠자로부터 도망친 마사키가 찾아오자 슬며시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카즈오의 무표정에 있다. 마음을 울리는 힘은 흉포한 수사 속에 던져진 서정성과 삶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