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LA] 할리우드, 아시안 아메리칸에 눈돌리나
2004-08-18
글 : 옥혜령 (LA 통신원)
최초로 동양계 배우들이 주연하는 <해롤드와 쿠마 화이트 캐슬에 가다>

지난 7월30일, 개봉 첫 주말 흥행 7위로 범상하게 개봉한 대니 라이너 감독의 신작 <해롤드와 쿠마 화이트 캐슬에 가다>가 범상한 문제작이 되는 이유. 그 범상함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 놀랍게도,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 아메리칸이 조연이 아닌 주연을 맡았다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사실 때문이다.

<아메리칸 파이>와 <베터 럭 투모로>에서의 호연으로 <피플> 선정 50명의 섹시 가이에 이름을 올린 한국계 배우 존 조가 한국계 미국인 캐릭터인 해롤드를, <반 윌더>에서의 코믹 연기로 주목받은 칼 펜이 인도계 미국인 캐릭터인 쿠마 역을 맡았다. 이 20대의 총각 둘이 주말 저녁, 대마초 약기운에 화이트 캐슬 햄버거에 필이 꽂혀서 뉴저지 숲속을 헤매는 모험담이 영화의 주 스토리. 영화의 장르만 두고 본다면, 감독의 전작, <내 차 봤냐?>의 뒤를 이은 전형적인 ‘스토너 로드무비’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 평단의 반응이다.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류의 화장실 유머감각도 살짝 곁들인 영화의 장르적 ‘전형성’은 반대로 비판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호평과 혹평이 모두 주목하는 영화의 범상치 않은 점은 해롤드와 쿠마라는 두 주인공의 인종적 정체성이라는 이슈가 미국의 여느 10대에게도 통할 만한 이 전형적인 여정에 약간의 색깔을 입히는 방식이다. 주변에 흔한,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아시안계 친구들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는 두 신인 작가, 존 헐위츠와 헤이든 숄로스버그의 기획의도는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아시안 아메리칸 캐릭터들은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할리우드 주류영화의 장르 관점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독립영화라는 세계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사의 맥락에서, 화이트 캐슬을 찾아가는 해롤드와 쿠마의 모험은 화이트 캐슬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만큼 상징적이다.<해롤드와 쿠마…>의 등장은, <아메리칸 파이>로 주목받은 존 조라는 배우와 아시안 아메리칸 캐릭터의 상품성, 그리고 그동안 불특정 그룹으로 분류되어온 아시안 아메리칸 관객층의 존재에 할리우드가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징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화이트 캐슬을 향한 첫걸음에 동포 관객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존 조의 목소리에는 제2, 제3의 존 조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아프리칸 아메리칸 관객을 겨냥한 영화의 대부분이 저예산 코미디였다는 사례에서 보듯, 가장 부담없는 방법으로만 주변인들에게 자리를 내주려는 할리우드의 전략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올 가을 <NBC> 시트콤 <남자들의 방>에서 주연으로 등장할 존 조의 모습이 기대된다.LA=옥혜령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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