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치명적 여자, 남자들을 농락하다, <얼굴없는 미녀>
2004-08-18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얼굴없는 미녀>가 보여주는 게임의 법칙

그녀는 진정 “할말이 많은 여자”였다. 그러나 쉴새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말들 중 과연 몇 퍼센트를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자는 마치 애매모호한 언어와 표정과 몸짓을 마음껏 남용하며 스크린 안 팎의 존재들을 진실게임 혹은 거짓말게임 안으로 유혹하는 듯하다. 어떤 남자는 그녀가 벌인 게임을 관전하려다 결국 게임의 대상이 된다(석원). 또 다른 남자는 그녀를 위해 의식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며 언제든 그녀의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과는 앞의 남자와 다를 바 없다(지수의 남편). 그리고 나는 그녀의 게임이 애초 사기였다고 믿으면서도 그녀의 언어에서 감춰진 진실을 발견하려고 무던히 애쓴다.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가 그녀의 게임에 말려든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의 언어에 진실과 거짓의 형태를 부여하려는 우리는 그녀가 벌인 게임판 안에서 놀고 있다. 얼굴없는 미녀가 벌인 게임판에는 명확한 룰이 존재할 리 없음을, 그녀에게 진실과 거짓 따위는 애초 고려의 대상이 아님을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녀가 벌인 게임에 남자들과 관객이 말려들다

그녀(지수)의 병은 ‘경계선 장애’. 물론 이를 진단하는 자는 남자 정신과 의사(석원)이다. 석원은 그녀의 복잡한 증상들을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단순하게 규정짓는다. 석원은 치료의 일환으로 그녀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의 과거를 불러오고 급기야 최면상태의 그녀를 덮치기에 이른다. 나는 석원을 통해 남성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영화의 전략이나 본분을 망각한 의사의 부도덕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석원이 지수를 치료한다”라는 단순한 도식이 이 영화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니까 지수는 석원의 치료방식에 단 한순간도 응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정상인”이 되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온몸에 쌓여 누적된 증상들의 해방이다. 지수가 쓴 분열적인 글들, 그녀의 과잉된 외모와 목소리, 틈만 나면 지어내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영화 초반 지수의 방을 떠다니던 물건들의 환영처럼 여기저기서 부유한다. 그녀는 최면에 걸린 척 과거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석원과의 섹스를 연기하고 있다.

그녀가 벌인 게임, 얼굴을 그리려다 파멸하는 남자들

석원의 최면술은 분명 지수의 광기를 컨트롤하려는 그의 이성에서 시작하지만, 그는 자신이 건 최면에 비이성적으로 빠져든다. 최면 안과 밖의 경계를 누구보다 신뢰하던 석원이 그 경계를 허무는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최면 밖에서도 그녀가 날 사랑하는지” 확인하려는 이 정신과 의사는 경계를 비웃으며 끊임없이 날아다니는 지수의 증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쓰고 소리지르고 변신을 하며 발산하지만 석원은 날마다 자신의 내부로 고립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치료하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건 석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수의 남편 역시 그녀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지수의 변덕과 광기를 견디지 못하면서도, 심지어 바람을 피우면서도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그 혼자만의 착각이다. 지수는 그를 붙잡은 적이 없다.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아내를 버리지 않는 그는 훌륭한 남편이기보다는 그녀의 주술에 말려든 또 한명의 남자에 불과하다.

이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지수가 아니다. 고착된 관계를 거부하며 그 무엇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녀와 달리 석원과 남편은 이 여자를 붙잡기 위해 목숨을 건다. 달리 말해, 그건 이 여자에게서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간장 태우는 것이다. 순진한 남자들의 욕망은 이 히스테리아의 거짓말 속에 진실이 감춰져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은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그녀는 죽어서까지 통합된 존재이기를 거부한다(도로를 나뒹구는 시체의 부분들).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자와 그녀에 대한 남자들의 두려움. 이것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미쳐가는 석원이 얼굴 반이 사라진 피투성이 여자의 환영을 보는 장면을 떠올리자. 잡힌 순간 달아나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여자는 그들에게 “괴물”이다. 영화가 뜬금없는 호러물처럼 느껴진다면 당신 역시 이 남자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의 병을 연극할 수 있는 사람은 병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환자는 지수가 아니라 남자들이다. 그들은 그녀의 최면에 걸렸다. 시작과 끝이 모호한 회색빛 병원 복도를 걷는 석원의 이미지가 영화 후반 지수의 남편에게서 반복되는 것은 그들이 동일한 운명의 굴레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그 운명은? 얼굴없는 미녀에 얼굴을 그리려 애쓰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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