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도 없다. 맷 데이먼(33)은 열여덟에 시작한 배우 인생의 5할 이상을, 하염없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를 연기하며 보냈다. <레인메이커>의 신참 변호사, <굿 윌 헌팅>의 소극적 천재, <리플리>의 애정 결핍증 사기꾼은 하나같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들릴락 말락 묻는다. 진보적인 어머니의 건실한 가치관을 익히고 16살부터 스스로 오디션에 줄 설 만큼 일찍부터 인생 계획이 또렷했던 맷 데이먼이라 더욱 역설적이다. 아무리 연기지만 남들보다 몇배로 연장된 사춘기를 사는 일이 왜 고역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미 연방정부 소유 재산”이라는 명명백백한 정체성에다 임무에 대한 반문이 아예 금지된 <본 아이덴티티>의 CIA 비밀요원의 역할은 어쩌면 맷 데이먼에겐 반가운 뉴스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기껏 자아투철했던 제이슨 본 요원이 작전수행 중 사고로 말미암아 자신의 관등성명을 포함해 만사를 잊어버리고 만다. 정말 운도 없다.
그처럼 유난히 느리고 신중하게 나이먹는 맷 데이먼에게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늘진 천재’의 얼굴을 보았다. MIT의 수학 천재 청소부, 욕망하는 상대로 변신하는 살인자는 말할 것도 없고 <라운더스>의 탁월한 도박꾼 마이크, 아버지의 명성에 눌린 <오션스 일레븐>의 소매치기 라이너스는 어떤가. 그들은 둘 중 하나다. 재능 자체가 어둠이거나, 누군가 떠밀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을 냄새나는 봇짐처럼 끌어안고 컴컴한 삼등칸 구석에 웅크리려 한다. 심지어 패럴리 형제 코미디 <붙어야 산다>에서도 맷 데이먼은 배우 지망생 샴쌍둥이 탓에 그림자의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딱한 식은땀을 흘렸다. 맷 데이먼의 출연료를 처음 1천만달러대로 밀어올린 <본 아이덴티티>와 속편 <본 슈프리머시>에서도 그는 동네 이발소에서 자른 듯한 머리에 무채색 옷을 걸치고 군중 속으로 스르륵 사라진다. 벤 애플렉이라면 값비싼 액션영화가 제격이지만 맷 데이먼은 아니라는 생각은 단견이다. 사실주의 노선이 뚜렷한 <본 아이덴티티> 연작이 요구하는 스파이로 맷 데이먼은 제격이다. 미남 007이 마티니를 들이켜며 사방 1km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암약하며 중대한 실무를 척척 처리하는 것은 제이슨 본 같은 요원일 것 같지 않은가.
<본 슈프리머시>에서 맷 데이먼은 부쩍 달라 보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재 소년의 우울’을 간직한 채 성숙한 남자가 돼버린 느낌이다. 그는 더이상, 갓 제대해 번화가에 나선 병장처럼 눈을 끔벅이지 않는다. 적게 말하고 빨리 움직인다. <본 아이덴티티>의 정당방위가 <본 슈프리머시>에 이르러 복수가 되고 나아가 속죄로 변모하면서 그의 턱은 점점 굳어지고 눈은 깊어진다. 2002년 <본 아이덴티티>의 개봉과 동시에 침체기에 종지부를 찍은 맷 데이먼의 현실도 그 못지않게 숨가쁘다. “33살인데 침대에서 베개 안고 뒹굴 수만은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는 그는 <본 슈프리머시>와 <오션스 트웰브>, 테리 길리엄 감독의 <그림 형제>를 유럽에서 찍느라 근 1년 동안 집에 일주일 이상 머물지 못했다. 잠깐의 카메오를 위해 삭발을 하는가 하면 12시간 특수분장을 하고 5시간 촬영하는 강행군에 관해 “이만한 보수를 받는 데 그 정도 노동은 당연하다”는 덤덤한 의견을 피력했다. 신인 영화감독과 작가의 고군분투를 그린 리얼리티 쇼로 벤 애플렉과 함께 제작하는 <프로젝트 그린라이트>도 2005년 초 세 번째 시즌을 맞고, 바텐더 애인과 그녀의 다섯살배기 딸과의 관계도 9개월째 지속 중이다. 인생에서 진실로 구하는 바를 일찍 깨달은 남자에게 어울리는 30대 중반이다.
맷 데이먼의 예전 캐릭터들과 달리 제이슨 본은 자기의 정체성을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과거의 정체성이 그를 찾아와 물고늘어진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선택과 과오가 삶을 밀어가는 것, 내가 누구건 살아야 하기에 누가 다가와 “너는 이런 인간”이라고 가르쳐준들 고맙지 않은 것, 그것이 중년의 시작이 아닐까. 맷 데이먼의 근황은 그런 상념을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