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은은 눈이 참 크다. <분신사바>에서 공포와 원혼의 분노를 표현하느라 더욱 커다랗게 치뜬 그의 눈을 보면, 사람 눈이 저렇게 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영화 속에는 이세은의 큰 눈을 놀리는 대사도 들어 있는데, 이 대목에서 매번 커다란 폭소가 터진다. “한번은 무대 인사에서 그 대사를 인용해서 인사를 드렸어요. 안녕하세요, 뒷통수 한대 치면 눈 튀어나올 것 같은 여자, 이세은입니다. 그랬더니 너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공포영화에 참 잘 어울리는 외모를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난 이세은은 그렇지가 않다. 눈이 크긴 하지만, 스스로 강조하듯이, “눈 모양이 동그란데다 눈꼬리가 처져서”, 사납거나 무서운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분신사바>에서 ‘눈 큰’ 이세은의 역할은 자신을 왕따시키는 친구들을 향해 분신사바의 주문을 외웠다가, 원혼에 사로잡히는 유진. 평범한 여고생이었다가, 빙의된 모습이었다가, 그 둘이 대치하는 혼돈 국면도 보여줘야 하는, 난이도 높은 역할이다. “안병기 감독님은 제가 딱 서울 아이 같고, 차갑고 되바라져 보이는가 하면, 천진난만해 보인다 그러세요. 카메라 앵글이나 분장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중적인 캐릭터로 보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세은은 공포영화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첫 작품이 유혈낭자한 공포영화 <해변으로 가다>로, 살해당하는 여대생 중 하나였다. 안병기 감독의 <폰>에 오디션도 봤지만, 재고의 여지도 없이 “똑 떨어졌다”. 그뒤로 <야인시대>의 나미꼬, <보디가드>의 한신애, <대장금>의 의녀 열이 등 히트한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악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지만, <분신사바> 소문을 들은 이세은은 충무로 ‘재도전’을 원했다. “유진 역할이 쉽지 않다는 거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욕심이 났어요. 안병기 감독님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사극에서 빠져나온 이세은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다. 촬영장에서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고, TV 대신 공포영화만 봤고, 음산한 음악만 들었다. 촬영 내내 극도로 우울하고 예민했었다면서도, 벌써 그 현장이 그리워진다고 털어놓는다.
“데뷔 무렵엔 막내동생 이미지라서, 그거 깨야 한다는 말 많이 들었거든요. 강하고 저돌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그런 역할들로 얼굴이 많이 알려졌어요. 비슷한 것 같아도, 이전 캐릭터들을 깨왔다고 생각하고요. 늘 내게 버거운 듯한 역할을 고르는 편인데,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포 연기, 스릴러 연기에 또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이미지 고정, 그런 건 걱정 안 돼요.”
실제로 학창 시절의 이세은은 분신사바를 잘하는 아이였고, 신상에 중요한 변화가 생길 때마다 꿈을 잘 꾸고 잘 맞추는 편이라고 했다. <분신사바>의 개봉에 관해서도 꿈을 꾸었다는데, 아무리 졸라도 그 내용을 알려주진 않는다. “영화 개봉하기 전까지는 절대 비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