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단절과 소외에 관한 영화로 우리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욕망>이나 <붉은 사막> 등의 영화가 대표작으로 거론되곤 한다. 비평가들은 불안이나 소외라는 개념으로 그의 영화를 해독하곤 했지만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그 이상의 해석을 필요로 하곤 한다. 그래서 피터 브루넷 등의 비평가는 안토니오니의 영화에서 해석적 기능을 따로 분리시켜 그것을 하나의 ‘플롯’으로 읽기도 한다. 다양한 상징과 의미들이 숨어 있는 영화에서 좀더 적극적인 영화읽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역시 소외와 단절의 영화로, 아시아권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기억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초기의 차이밍량 영화가 “아시아의 안토니오니 영화”라고 불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정만세>는 메이와 시아오강, 그리고 아정의 이야기다. 부동산업자 메이의 하루는 새벽이 되기도 전에 시작된다. 잠재적 구매자와 세를 찾는 사람들에게 빈 아파트와 오피스 주변을 보여준다. 시아오강은 묏자리를 판매한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단순히 광고지를 수집하고 우편함으로 부치는 데 소비한다. 그가 실제로 판매하는 것은 기념소라고 불리는 납골당이다. 그리고 또 다른 청년 아정은 옷을 판다. 그는 일정한 직장이나 어떤 종류의 보장도 원하지 않는 젊은 층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렇듯 바쁘게 살아가는 남녀가 우연하게 서로 만나게 되고 얽히게 된다. <애정만세>는 놀랄 만큼 과묵한 영화다. 영화는 시아오강이 우연히 아파트 열쇠를 발견하여, 몰래 그 열쇠를 가지고 저녁에 어느 아파트의 한 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입부에서 인물의 대사는 거의 없으며 단순한 소음만으로 영화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별로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애정만세>가 얼마나 현대인의 일상을 세밀하게 비추고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과묵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영화에서 인물들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몇개의 공통적 사항을 공유하는 것에 기인한다.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몇 가지 습관이다. 시아오강이 머무는 같은 집에, 메이는 청년 아정과 즐기기 위해 그를 데리고 들어온다. 이후 아정은 열쇠를 몰래 가지고 또 하나의 빈방에 잠입한다. 기이한 동거생활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인물들은 연이어 담배를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습관적으로 성행위를 갖곤 한다.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섹스라는 것은 영화를 이해하는 유효한 방법이 되곤 한다. 감독 스스로 “성(性)은 인간에게 사적이고 개인적 부분이다. 내면세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관계다. 나는 영화 안에서 성과 관련된 장면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다. 성이 없다면 내 영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한 적도 있다.
<애정만세> 이후 차이밍량 감독은 <하류>(1996), <구멍>(1998)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가족과 동성애, 현대사회에서의 소통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이후 작품에서 고루 발견되고 있다. 차이밍량 감독이 동양의 안토니오니가 될 수 있을지 여부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가 엇비슷한 주제의 영화를 차츰 능숙하게 변주해내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