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할 필요가 있겠어?” 기형이나 괴물 캐릭터를 도맡다시피해온 론 펄먼은 분장 없이도 충분히 독특한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따로 분장이 필요없을 거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가 않다. <헬보이>는 그가 특수분장을 위해 새벽잠을 설친 12번째 영화다. 되짚어보면, 그는 첫 영화 <불을 찾아서>부터 네안데르탈인이었고, <장미의 이름>에선 콰지모도풍의 꼽추 이교도였고, 린다 해밀턴과 함께한 TV시리즈 <미녀와 야수>에선 사자의 얼굴을 한 야수 빈센트였다. 그리고 <헬보이>에선 급기야 얼굴과 몸에 빨간 라텍스를 덧입고, 이마엔 뿔을 엉덩이엔 꼬리를 단, 악마의 아들이 되었다. 자신을 모델로 한 코믹북을 보며 “너무 못 그렸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영화 속의 헬보이에게선, 오십대 중반에도 코믹북 영화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론 펄먼의 쿨한 매력이 물씬 풍겨난다.
론 펄먼이 보는 헬보이는 ‘히어로’라기보다는 ‘루저’이고, 론 펄먼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캐릭터다. “맥주와 피자를 좋아하고, 골방에서 만화와 흑백영화만 보는 그는 어쩌다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됐을 뿐이지, 그냥 낙오자다. 그간의 분장 영화들은 생김새뿐 아니라 행동거지와 내면 설정도 달라야 했지만, 이번엔 그냥 나를 연기하면 됐다. 헬보이는 가장 괴상하고 신화적인 버전의 나다.” 그렇듯 애착이 각별했건만, 론 펄먼은 <헬보이>를 품기까지 꼬박 7년을 기다렸다. 론 펄먼이 최상이자 유일한 초이스라고 확신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스튜디오가 선호한 더 록과 빈 디젤을 물리치는 대신 2천만달러의 예산 삭감을 감수했다. “나는 기예르모에게 괜한 고집 때문에 포기하기엔 아까운 영화니까 누구든 스튜디오가 원하는 배우를 받아들이라고 말했고, 그는 그러마고 대답했지만, 내 등 뒤에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수분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지닌 론 펄먼은 그럴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비인간적인 분신들에게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발견했고, 그들의 추한 용모에서 아름다움과 순수를 표현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역할들에 천착하는 건 이상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안의 괴물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억압하거나 과잉 보상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나는 자기 안의 괴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낀다.” 괴물 전문 배우 론 펄먼은 이제 남의 내면에 도사린 괴물까지 다스리는 조련사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