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촬영이 시작된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낯설어하며 가까스로 표정 변화가 이어진다. 남자라면 몰라도 여배우들에게는 드문 광경이다. 그러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모습이 달라진다. 생각이 바뀐다. ‘낯가림’이 아니라 ‘신중함’이구나. 질문을 던지면 10초쯤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는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직설적인 질문을 하자 너무 이분법적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영화 <가족>으로 스크린에 데뷔하는 신인배우 수애는 ‘신중’하다. 그녀의 페르소나인 전직 소매치기 소녀 이정은은 영화 내내 상소리 한마디 내뱉지 않는다. 할말을 삭이면서 이를 악물고 그저 살아갈 뿐이다. “보기에는 차갑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라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차분히 설명한다. 개봉이 다소 늦춰진 것에 대해서도 “엎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했지만 초조하지는 않았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잘 울어서 그럴까요?” <러브레터>의 조은하, <회전목마>의 성진교 등 브라운관에서 유독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자주 맡아온 데 대한 스스로의 ‘분석’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수애의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궈낼 것 같다. 하지만 <가족>에 관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가족>에서도 특유의 입자 큰 눈물방울을 쏟아내긴 하지만, 수애가 이 영화에서 배운 건 오히려 ‘잘 울지 않는 법’이다. 폭력배 창원이 아버지를 자신 앞에 데려와서 내던지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으로 참는 걸 배웠던 장면이에요. 우는 것보다 눈물이 쏟아질 상황에서 그걸 눌러두는 게 정말 어려웠거든요.”
데뷔 초기부터 그녀를 따라다닌 별명은 ‘리틀 정윤희’. <가족>에서도 한곳을 응시하는 수애의 눈빛은 쉽게 정윤희의 얼굴과 겹쳐진다. 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했던 정윤희를 닮은 그녀가 첫손에 꼽는 배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가진” 장만옥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전체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장만옥의 원숙함은 수애가 말하는 “튀거나 인상적인 것보다는 전체를 잘 조절하는” 연기의 완성형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처음 작품에 접근하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역할을 묻자 “그냥 하고 싶다고 무조건 덤벼들면 망하지 않나요?”라는 애늙은이 같은 반문이 돌아왔다. “주성치를 매우 좋아하고, 그 사람 영화를 자주 봤어요. 하지만 이미지 변신을 위해 지금 내가 코미디영화를 한다면 못할 것 같아요. 아니, 못 해낼 것”이라는 냉정한 자평에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의 경계를 정확히 긋는 의지가 느껴진다.
“춤도 별로 못 추지만” 한때 4인조 여성 댄스그룹을 준비했던 그가, 결국 연기로 돌아선 것도 어쩌면 그 명징한 금긋기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일찍 결혼했을 거예요. 이일찍.” 뭔가 선택하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수애의 다음 프로젝트는 KBS의 대하사극 <해신>이다. 그는 장보고(최수종)의 연인 정화 역을 맡게 된다. 이 ‘조숙한 신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녀의 ‘할 수 있는 일’이 코미디까지 확장될 순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