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철수 영희>,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08-31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간단한 산술로 하자면 단관이 아닌 멀티플렉스 극장이 각처에 늘어났으니 관객이 볼 영화도 다양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관객 층을 정확히 ‘기획’한 영화가 아니면 이제 극장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관객이 비기획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는 이러한 곤궁으로부터 출발한다. 소위 미개봉, 저예산 영화 상영극장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는 8월 27일부터 10월 7일까지 국내 저예산 미개봉작 10여편을 아트플러스 체인 8개 극장에서 상영한다. ‘아트 플러스의 선택 2004 하나 더 +’ 라는 다소 암기하기 힘든 제목의 이 릴레이 상영은 서울 하이퍼텍 나다와 뤼미에르 극장에서 시작해 목포 제일극장, 프리머스 제주, DMC 부산, 광주 극장, 서울 씨어터 2.0과 안산 시네마이즈로 이어진다고 한다.

저예산 상영관 ‘아트플러스’가 상영한 초등학교 친구들 담백한 추억이야기

현재 영화 아카데미 출신의 감독 20명이, 영화 아카데미 20주년을 기념해 따로 또 같이 만든 <이공 프로젝트>를 비롯해서 ><썬데이@서울> (오명훈 감독) 그리고 <신성일의 행방불명>(신재인 감독) 등의 장편 독립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단관 극장 상영과 비디오 유통 그리고 텔레비전 방영이라는 연속체 안에서 영화가 관람되었던 90년대의 상황과 비교해, 현재는 홈 씨어터의 보급, 인터넷을 통한 영화 파일 공유 등으로 개봉관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메가박스 극장이 위치한 코엑스 몰이 보여주는 것처럼 극장이 고급 상가를 갖춘 대형 소비 공간으로 포섭됨에 따라 영화는 점점 지배적 소비문화 패턴에 맞춘 기획을 하게 되고, 개봉관은 영화들을 전시하는 강력한 쇼윈도로 기능한다. 이런 와중에 저예산 장편영화의 배급망이 선을 보이는 것은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 ‘아트 플러스의 선택’에서 가족들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

1989년 <꼴찌에서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로 일찌감치 고등학교 교육 현장을 찾아갔던 황규덕 감독의 <철수 영희>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 극장 소비문화가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소위 금융 자본이 지배하는 후기 산업 사회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보이는 대전 대덕 초등학교 4학년의 세계를 담고 있다. 영화는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해 꽃집을 하는 할머니와 살게 된 영희의 전학으로 시작된다. 모두 똑같은 푸른 색 운동복을 입고 집단 체조를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의 세계 역시 계층적 위화감으로 살짝 짓눌려있다. 유리라는 아이는 극성 엄마를 등에 업고 할머니와 함께 꽃집에 살고 있는 영희를 왕따하려 한다.

그러나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영희는 유리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반장을 맡게 된다. 한편, 영희의 짝 철수는,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에게 ‘철수 바보’ 소리를 듣고 살뿐만 아니라 고무줄 끊기 등 온갖 고전적 장난을 도맡아 하는 장난꾸러기다. 그러나 영희를 좋아하게 되면서 철수는 변해 간다. 이윽고 영화의 구조는 ‘증여’를 모티브로 정점에 오르면서 모든 소소한 갈등들을 감싸 안게 되는데, 말하자면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초가을 바람이 슬며시 새드는 이 즈음, <철수 영희>는 가족들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담백한 재미가 있는 선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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