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 떨칠 수 없는 사랑의 쇠사슬, <가족>
2004-08-31
글 : 문석
가족, 그 떨칠 수 없는 사랑의 쇠사슬에 관하여

“왜 왔어, 언제 나갈 거야.” 전과 4범에다 살인미수 혐의로 3년 동안 교도소에 다녀온 딸에게 아버지는 매몰차다. 전직 경찰이라는 점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아버지가 그 딸을 반길 리 만무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늦둥이 동생 정환(박지빈)을 보러 집에 들렀을 뿐인 딸 또한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그의 기억 속 아버지는 만날 취한 채 엄마를 구타했던 존재일 뿐이다. 부녀는 감정의 상승작용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미움을 높이 쌓아올려왔다. 그렇게 홀아비 주석(주현)과 딸 정은(수애)은 서로의 본심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영영 남이 돼버릴 수도 있었다. 정은이 예전 몸담았던 조직의 보스가 훔쳐간 돈을 내놓으라며 정은과 아버지를 괴롭히면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숨겨뒀던 속마음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족>은 제목마따나 주제를 향해 직구로 정면승부하는 영화다. 머리가 커진 뒤로 내내 아버지를 증오해왔던 딸이 자신을 던져서라도 딸의 미래를 지켜주려는 아버지의 본심을 알게 되기까지를 그리는 이 이야기는, 사실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철모르는 딸과 말 그대로 ‘헌신’하는 아버지라는 <가족>의 두 주인공 자리에 각각 아들과 어머니,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끈끈한 우정을 나눈 두 친구를 바꿔넣는다 해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그럼에도 <가족>은 그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보스는 아버지가 대신 돈을 갚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은의 배신을 용서하지 않고, 가족을 볼모 삼아 정은에게 관할 경찰서의 간부를 상대로 ‘육보시’를 하라고 협박한다. <가족>의 주인공들은 이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참혹한 운명의 구렁텅이에 빠진 뒤에야 겨우 서로에 대한 사랑을 처절하게 확인한다. 부녀의 사랑은 살가운 속삭임 한번 없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가족>의 정면승부가 미덕을 발휘하는 지점은 이곳이다. 신인 이정철 감독은 신파의 ‘유혹’을 떨치고 오히려 눈물을 절제시키고 장면을 함축하려 애씀으로써 감정의 집중을 이뤄냈다. <가족>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주석이 정환에게 술잔을 권하는 장면은 이같은 직구 승부의 성과물인 셈이다. 다소 앙상한 캐릭터와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의 연결은 이 우직함이 만들어낸 얼룩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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