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십대 소녀들의 생존 법칙, <퀸카로 살아남는 법>
2004-08-31
글 : 박은영
린제이 로한, 또래 집단의 먹이사슬 혹은 생존 법칙을 쿨하고 유쾌하게 소개하다

알다시피, 학교가 학문만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도 교육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상’을 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일일진대 때로 아이들은 생존하고 군림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음모와 협잡도 불사한다. 너무 하드보일드하다고? 어느 사회가, 어느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십대 소녀들의 일상을 좌우하는 그 엄혹한 생존 법칙을 소개한, 매우 우습고도 신랄한 코미디다.

동물학자인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성장한 케이디(린제이 로한)는 미국으로 건너와 한 고등학교에 편입한다. 끼리끼리 패거리를 이룬 그곳에서 케이디는 아웃사이더 리지와 친구가 되고, 그의 제안에 따라 학교 퀸카 레지나(레이첼 맥애덤스)에게 접근해 약점을 캐내려 한다. 레지나의 옛 남자친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한 케이디는 어느새 레지나를 능가하는 권모술수의 달인이 돼버리고, 권력 구도에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선의와 진심으로 똘똘 뭉친 케이디가 거짓과 위선에 물드는 과정을 굳이 ‘타락’으로 그려내지는 않는다. 케이디의 내레이션(자기 변명은 안 한다)과 판타지(<동물의 왕국> 버전은 압권이다)가 곁들여진 구성은, 위험한 욕망에 사로잡히면서 신의를 저버린 과오도, 결국 어떤 깨달음에 이르는 귀한 경험이었음을 역설한다. ‘다른 사람이 되려하지 말고, 너 자신으로 살라’는 교훈. 우리의 주인공이 본래의 순수하고 착실한 모습을 되찾는다는,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긴 하지만, 과정의 디테일은 수긍할 만하다. <여왕벌과 여왕벌을 꿈꾸는 아이들: 당신의 딸을 파벌과 가십과 남자친구 그리고 청소년기의 현실로부터 도와주는 법>이라는 긴 제목의 원작(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다)은 다소 과장되고 단순화된 코미디에 번득이는 현실 풍자를 선사한 일등공신.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프로듀서 론 마이클스와 작가 티나 페이,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감독 마크 워터스와 주연배우 린제이 로한이 의기투합한 이 영화를 <리치몬드 대소동> <헤더스> <일렉션>의 반열에 올리긴 무리가 있지만, 섹스 코드와 화장실 유머로만 밀고 가는 이즈음의 하이틴영화 중에서는 그 만듦새와 개성이 단연 돋보인다. 덧붙여 한마디, 이 영화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해묵은 편견을 부추긴다고 딴죽을 건다면, 그건 좀 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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