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업계 1위를 확보한 CJ엔터테인먼트·CGV 공동대표 박동호
2004-09-0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좋은 영화는 흥행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가 최근 강우석 감독의 제작·배급사 시네마서비스와 극장체인 프리머스 시네마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업계 1위 자리를 확보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CJ가 이뤄낸 투자·배급·상영의 비교우위가 당분간 흔들릴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어쨌든 힘의 균형이 깨진 만큼 새로운 질서가 불가피해졌다. 힘쏠림의 가속화가 독과점의 폐해로 나타날지, 산업 합리화의 지렛대로 작용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빅딜’을 이뤄낸 박동호 CJ엔터테인먼트·CGV 공동대표를 만나 CJ의 향방에 대해 물었다. 마침 CGV의 인디영화관 개관, 아시아인디영화제 개최 등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우석 감독과 프리머스 시네마의 향방을 놓고 갈등을 벌일 때, CJ가 프리머스를 고집하는 중요한 이유로 메가박스의 동양그룹이나 롯데의 위협을 들었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뿐 아니라 제작·배급을 하다보면 상영까지 수직계열화의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게 사실이다. 롯데는 12개의 극장 사이트를 2006년 45개 사이트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6년 동안 넓혀온 체인이 21개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계획이다. 이런 환경에서 프리머스가 롯데쪽으로 간다면 업체 순위조차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우리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상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건 막은 것이고 이제 프리머스를 우량 기업으로 만들려고 한다.

-SK가 영화산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산업에 자본이 들어오는 건 산업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문제는 시장 규모를 무시하고 다작하는 양산 개념으로 가게 되는 경우다. 콘텐츠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고, 배우와 스탭들의 일정이 빡빡해지면서 당연히 제작 비용이 높아진다. 시장의 선순환 구조에 도움이 되면 환영이지만 이런 부분이 우려된다.

-또 다른 빅딜을 준비하는가.

=프리머스 지분 확보는 1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제 호흡조절과 안정화가 필요하다. 온라인 포털로 인수한 엔키노, 게임의 넷마블 등이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

-영화에 관한 모든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매니지먼트에 대한 사업 구상은.

=아직은 계획없다. 필요하다면 검토하겠지만.

-검토해본 적이 없나.

=검토는 한다. 들어갈 필요가 있는지. 필요하다면 들어간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수평적, 수직적으로 끝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그렇다.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어 음악, 출판, 방송, 매니지먼트 등 모든 게 관여되기 때문에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단이 필요하다. 과연 비즈니스로 존재할 수 있느냐, 사업성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판단이.

-스크린 점유율이 얼마나 되느냐의 수치문제를 떠나서 배급사가 극장사업을 하는 것, 매니지먼트사가 제작사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 미국처럼 독과점 규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독과점 논리를 펼치는데,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1930년대 미국은 입도선매와 일괄 계약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배급사가 극장에 강제로 자기 필름 사게 하거나, 영화 몇편을 들이대며 무조건 틀라고 하는. 또 내 필름만 배타적으로 상영하게 하기도 하고. 그래서 법원이 독과점 규제에 나섰지만 지금 이런 일을 우리가 할 수가 있나? 할 수도 없고 우리 시장의 수요 수준에서 해서도 안 된다. 독과점의 기준과 내용이 모두 다르다. 또 대기업들이 앞다퉈 들어오고 서로 극장 짓겠다고 경쟁하는데 어떻게 독과점이 되겠나.

-극장 부율을 현재의 5 대 5에서 6 대 4로 배급사 몫을 더 키우고 극장 몫을 줄이고 싶어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를 주도할 생각은 없는지.

=부금문제는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강우석 감독이 투자, 제작, 감독까지 도맡아 대작을 만들어놨다. 그러면 더이상 뭐가 필요하겠나. 콘텐츠의 파워와 환경, 시장 필요의 상대적 개념인 것 같다. 5 대 5이든 4 대 6이든 콘텐츠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주도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에선 기획·제작 대행료를 제작비 안에 10% 정도 일정하게 포함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 제작사들도 이런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제작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투자사가 6, 제작사가 4로 수익을 갖는다. 미국 같으면 투자사가 8이다. 왜냐하면 투자를 안 했으니까. 이게 합리적인 경제 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제작사의 크리에이티브를 높게 평가한다. 프로덕션 피를 이미 충분히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는 10월 CGV가 인디영화관 3∼4개관을 상시운영하고, CJ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아시아영화 중 5개 작품을 구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아시아인디영화제를 매년 열 계획이라던데.

=인디영화관은 멀티플렉스가 다양한 영화를 틀지 않는다는 사회적 시각도 있고, 인디영화를 만드는 계층이 젊은 층, 배우는 층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데 의의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아시아인디영화제는 그 폭을 넓혀서 아시아의 인디감독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주고, 우리의 인디영화를 여기에 출품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런 걸 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한국영화전용관을 초기부터 운영했고, 독립영화 제작지원도 하며, 독립애니메이션 단편영화제도 했다. 이걸 확대한 개념이다.

-하필 프리머스를 둘러싼 설왕설래 직후여서 다분히 이미지 개선을 위한 포석용으로 보인다.

=그걸 따지기 이전에 이런 걸 하는 곳이 또 있나. 아시아인디영화제는 지난해 말부터 경영계획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프리머스랑 무슨 관계가 있나.

-요즘 영화제작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일시적인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논리가 단순하다. 돈이 안 남으니까 투자사가 빠진다. 창투와 펀드 등 금융자본 등이 별로 수익을 남기지 못하고 거의 다 소진됐으니까. 산업 자체가 정신을 차리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웰메이드 영화, 수익이 나는 영화쪽으로 가야 한다. 다작으로 양산했다가는 큰일난다. 최근 경향을 보니 조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웰메이드 영화와 흥행영화가 같은 뜻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가 웰메이드 영화라고 생각한다. 웰메이드라는 게 구성이 완벽하고 연기가 뛰어나다는 요소가 있지만 굳이 이런 구분없이도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예술영화든 독립영화든 마찬가지다. 잘 만든 좋은 영화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것이고 그러면 수익이 난다. 그러면 그걸 가지고 또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가 곤란해진다.

-자체 제작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외부에서 보기에는 다분히 흥행을 목표에 둔 영화 제작인 것 같은데.

=우리 관점에서 좋은 영화는 흥행영화다. 예술영화를 일정한 목적에서 투자하고 만들어야겠지만, 우리 사업의 기본 방향은 흥행영화다.

-자체 제작하는 규모를 확장할 수도 있나.

=우리가 투자를 많이 하는데 제작 현장에 관여해보지 않으면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일년에 수백억원을 투자하고, 일부는 구매도 한다. <리딕> 같은 경우는 구매했다가 진짜 혼구멍이 났는데, 영화 보고 고르는 눈은 영화를 제작하는 경험이나 역량이 없으면 불가능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10편씩 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체험을 위해서 하는 거다. 아직은 배우고 있는 중이다. <위대한 유산>은 체계를 잡고 시작한 건 아니다.

-촬영 중이던 <소금인형>을 중단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 투자사가 상당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제작을 도중에 포기한 희귀 사례라는 점에서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예전과 다른 관례나 관행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인가.

=그건 의지가 아니다. 어느 업체든 다 그렇게 결정하지 않을까. 계약 당시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중단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면 패널티를 우리가 다 먹어야 한다. 그런데 진행이 계획대로 안 되니까 중단하는 거다. 새로운 논리나 원칙이 아니다.

-끝까지 밑어붙이는 것보다 중단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평가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진행을 시킬 수 있나.

-판단의 근거가 필요할 텐데, CJ가 제작현장에 파견하는 슈퍼바이저의 운영이 여기서 나온 건가.

=아니다. 슈퍼바이저는 제작·투자 지원이다. 우리가 현장을 잘 모르니까 현장의 애로도 파악하고, 애초 진행하기로 했던 일정 관리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제작실장과 역할이 부딪친다고 불만이 많은 것 같던데.

=거기서 우리가 의견을 제안하지는 않는다. 할 수도 없고. 그건 제작자에게 맡겨야 작품이 굴러가지. 우리가 먼 데 앉아서 감독의 의도를 알 수가 있나.

-CGV만 경영할 때와 비교하면, 영화산업과 영화인을 바라보는 데에 변화가 있는지.

=극장 사업을 하면서 패러다임을 많이 바꿨다. 기존의 극장 개념으로 멀티플렉스를 할 수가 없었다. 극장을 고객 만족의 서비스 산업으로 바꾸고 그게 선순환 구조가 되니까 멀티플렉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덕분에 한국영화 제작도 일부 도움이 됐다. 이쪽에 와서 보니까 제작, 배급도 패러다임을 선진화쪽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 배급도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좀더 합리적으로 가야 하지 않나. 어떻게 하면 흥행이 가능한지, 적절한 이익을 위해 사전에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분석을 위한 데이터는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시야를 넓게 봐야 한다. 부가수익뿐 아니라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둔 콘텐츠 제작, 그리고 고객만족을 위한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해가는 능력 등 좀더 산업적 마인드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벤치마킹할 업체로 미국이 있지 않나. 미국처럼 콘텐츠가 극장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내야 한다.

-올해 인상 깊게 본 한국영화는.

=<실미도>, 그리고 우리 영화 중에선 <인어공주>. <인어공주>는 잘 만들었는데 흥행에선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잘 만든 영화, 좋은 영화가 꼭 흥행도 잘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쓰리, 몬스터>도 좋은 영화이지만 흥행은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좋은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는 확신을 여전히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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