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장준환 감독의 단편 <털> 촬영현장
2004-09-06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털 없던 청년, 털 대왕을 ‘꿈’꾸다

“말만 단편이지 CG, 특수효과까지 블록버스터예요.” 오랜만에 다시 장준환 감독과 손발을 맞추는 <지구를 지켜라!>의 페르소나 신하균의 설명이다. ‘병든 지구’를 구하려던 병구는 가슴에 털을 키우려는 ‘운명에 도전하는’ 운도로 변신했다. 촬영장인 파주 아트서비스 A스튜디오에서는 헤어드라이기, 빗, 가위가 동원되어 빗질이 한창이다. 2만4천 프레임까지 커버해서 총알도 잡아낸다는 고속촬영 카메라가 머리칼을 가르는 가위의 몸짓을 좇는다. 머리칼은 팬(fan)에 흩날리고 카메라는 천천히 팬(pan)한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이날 촬영분량은 고속촬영 8컷을 포함해 총 40컷이다. 끼니도 거른 채 진행된 강행군으로 고속촬영을 겨우 마쳤는데 해는 이미 저물었다.

다음(Daum)단편영화 페스티벌(가제, 이하 다음단편)의 두 번째 주자인 장준환의 <털>(가제)은 그의 전작들처럼 일상과 판타지를 오가는 ‘기담’이다. 짝사랑하는 진아(김동연)를 가슴털이 많은 고릴라 대리(원웅재)에게 뺏겼다고 믿는 우리의 주인공 운도는 ‘바로나’를 중심으로 각종 발모제를 발라보지만 딱히 효과가 없다. 가슴털의 욕망이 무의식을 건드렸는지 운도는 꿈속에서 ‘털의 왕국’ 대왕으로 거듭난다. 진아는 그의 가슴털에 매혹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왕비다. 라이벌 김 대리는 포승에 묶인 채 어전으로 끌려온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소름> 〈4인용 식탁>의 정은영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털>의 세트는 핑크빛 향연을 이룬다. 아홉겹 커튼과 주단 그리고 주인공들이 자리한 소파와 벽면은 핑크색과 선홍색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김 대리가 운도 대왕 앞에 끌려오는 장면은 고전 할리우드영화의 서사극 내부 세트를 연상시키는 색감과 톤으로 연출되었다. 단편임에도 장편 못지않게 타이트한 진행이라고 말하자 장준환 감독은 “영화만 찍으면 그냥 이러네”라며 10년 만에 단편으로 외출한 소감을 밝혔다.

김성수, 장준환, 김동빈, 허진호, 이재용 5명의 스타 감독으로 구성된 ‘다음단편’은 현재 김성수 감독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액션 〈Back>만 촬영을 마친 상황. 〈Back>에서 관습에 반발하는 재기발랄한 주인공은 류승범이다. 10월5일 〈Back>을 시작으로 1주일마다 한편씩 인터넷에서 릴레이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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