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터미널>
2004-09-08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실화의 엉뚱함과 스필버그식 유머가 사라진 <터미널>

케네디 국제공항에 무한정 잔류된 국적없는 동유럽 여행객에 대한 코미디 <터미널>의 보도자료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사뮈엘 베케트식 주제를 가볍게 다뤘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준다. 두려워하지 마시라,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더 가볍게 다룬 것도 아니니까.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후”라는 보도자료에는 감독이 “관중이 웃고 울며 세상에 대해 좋게 느낄 수 있는 영화를 하나 더 만들고 싶었다”고 인용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톰 행크스의 빅토르 나보스키는 처음에 녹슨 플랜터스 땅콩 캔을 손으로 찌그러뜨리고 미국 세관을 통과할 때 가상의 동유럽 언어를 지껄이며 꾸부정하게 걷고 털이 성성 난 냄새나는 시골 사람으로 등장한다. (가상의) 고향 크라코지아에 혁명이 일어나 비자가 취소되자 나보스키는 면도를 깨끗하게 하고선 성공적이고 근사한 악센트를 가진 영국 신사가 된다. 아마 로빈 윌리엄스를 염두에 두었던 배역 같은데 행크스의 이국땅의 이방인은 레이건 시절의 훈훈한 영화, <허드슨 강의 모스크바>에서 윌리엄스가 연기한 게걸스럽게 먹는 러시아 이민자를 똑 닮아 있다.

똑똑하면서도 멍청한, 세계화의 영웅이자 희생자인 나보스키는 로빈슨 크루소가 (혹은 행크스가 <캐스트 어웨이>에서 맡은 인물처럼) 외딴 섬에서 살았듯이 공항에서 거주하지만, 크루소와는 달리 격분한 터미널 보안 책임자, 프랭크 딕슨(스탠리 투치)에 의해 뉴욕을 돌아다닐 수 있는 몇번의 기회를 갖는다. 나보스키가 동전을 돌려받기 위해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를 배우는 모습이 모니터되면서 터미널 건물은 거대한 실험 상자를 환기시킨다. 행크스는 특히 보안 카메라를 통해 우아한 신체 연기를 보여준다.

고립되어 있던 크루소와는 달리 나보스키는 많은 프라이데이(<로빈슨 크루소>에서 크루소를 돕는 원주민- 역자)들을 만난다. 많은 인종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데 이들 중 쿠마 팔란이 연기한 피해망상의 조그만 청소부는 참 거슬리는 인물이다. 이들은 직장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처럼 영화를 끌고가며 나보스키가 아름답고 예민한 스튜어디스(캐서린 제타 존스)와 플라토닉한 연정을 갖도록 돕고 나보스키가 세관원들과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종의 도가니로서의 전통적인 미국을 보여준다.

상업적 성공이 암담한 영화 <터미널>에서 딕슨은 수표를 써주며 “미국이 너무 많은 사람을 가둬서 더이상 설자리도 없다”고 말한다. 엉터리 같은 상황(얼마나 어리석은가는 영화 종반에 가서야 드러난다)과 많은 비논리적인 우연들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문서를 잃고 1988년 이후 샤를 드골 공항의 빨간 벤치에서 거주한 (망명 신분을 얻었지만 수년째 공항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는) 이란 태생의 여행자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같은 이야기에 근거해 1993년 프랑스의 코미디영화와 나세리 자신이 나오는 2001년 영국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드림웍스 역시 나세리에게 돈을 지불해 이야기를 샀지만 이야기가 갖고 있는 엉뚱함들은 영화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웃기려고 노력하지만 웃기지는 못하는 <터미널>의 유머들은 젖어서 미끄러운 바닥에서 얼마나 많이 엉덩방아를 찧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계산에 주로 기초해 있다. 거대한 세트는 공학적 경이이지만 나보스키에겐 단순한 지능검사장이 아니다. 이런 공간을 자크 타티라면 어떻게 사용했을까 궁금하지만 스필버그는 주로 간접광고(PPL)를 위해 사용했다(텔레비전 이미지나 회사 로고를 집어넣는 데 스필버그만한 사람이 있을까?). 냉혹한 행동주의자인 감독은 강아지를 쓰다듬고 존 윌리엄스의 달콤한 멜로디로 관객을 싸구려 감상에 젖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보도자료는 “나보스키의 이야기에 즉시 호감을 느꼈다”는 스필버그의 상투적인 말을 인용하고 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터미날>은 9·11 이후 공항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차라리 나보스키를 중동인이나 동남아시아인 혹은 보스니아 여행객으로 만들었다면 이 진부한 영화에 어느 정도 인간의 고뇌를 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2004년 6월14일.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번역 이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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