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뉴욕커들의 새로운 발견, 오! 한국영화
2004-09-08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뉴욕한국영화제와 AAIFF, <바람난 가족> <살인의 추억> 인기

뉴욕의 대표적인 아시안영화제인 제4회 뉴욕한국영화제(8월13∼19일)와 제27회 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AAIFF, 7월16∼24일)가 한달 사이로 맨해튼 아시안 전용극장 이매진아시안시어터(IAT)에서 열렸다. 매년 최신 한국영화를 뉴욕에 소개하고 있는 뉴욕한국영화제는 IAT와 브루클린의 BAM 로즈시네마(8월20∼22일)에서 총 15편의 장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미국은 물론 해외 아시안 영화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AAIFF는 IAT 외에도 맨해튼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100여편의 장·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의외의 복병 <여섯개의 시선>, 유쾌한 폭소 <지구를 지켜라!>

영화제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 행사의 인기 작품은 단연 <바람난 가족>과 <살인의 추억>.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와 주간잡지 <타임 아웃 뉴욕> 등이 호평한 이 두 작품은 관객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20, 30대 관객이 많았던 이번 행사에서는 이외에도 <지구를 지켜라!> <말죽거리 잔혹사> <원더풀 데이즈> <클래식> 등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의 복병은 페스티벌쪽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옴니버스 작품 <여섯개의 시선>. 미디어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맨해튼과 브루클린 극장 양쪽에서 모두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H> 상영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이종혁 감독

이번 행사에는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과 <H>의 이종혁 감독,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초청돼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김 감독은 영화제에서 <원더풀 데이즈>를 관람한 한 뉴욕 베이스 프로듀서로부터 작품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 감독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작품 속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궁금해하는 관객의 질문이 이어졌고, <지구를 지켜라!> 상영 전에는 장 감독이 때밀이 수건과 물파스를 직접 관객에게 나눠줘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 올해의 가장 큰 변화로는 지난해 코리안필름포럼(KoFFo)과 공동 주최를 했던 삼성전자가 단독 주최를 한 것. 유학생과 재미동포로 구성된 KoFFo는 영화제의 직접적인 운영을 더이상 하지 않으며, KoFFo의 일부 멤버들로 구성된 ‘미디어뱅크’가 실질적인 운영과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미디어뱅크의 조윤정씨는 “미디어뱅크로 탈바꿈한 뒤 멤버가 바뀌고, 회사 설립 이후 첫 프로젝트라 부담감이 있었다. 이전 영화제들에 비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이랄까”라며 “관객의 호응 면에서나 미디어뱅크를 알리는 데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미디어뱅크는 영화제를 알리기 위해 3회 파티를 개최했고, 영화제 트레일러를 로컬 뉴스채널 NY1과 한국 케이블 방송 TKC에 내보냈으며, 기자회견과 패널디스커션 등의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앞으로 영화배급을 기획하고 있는 이들은 올해 상영작 중 하나인 <영매>의 판권을 논의 중이다.

AAIFF, 한국영화와 재미동포 참여 작품의 약진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참신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 AAIFF에서는 올해 특히 한국과 재미동포들의 작품이 크게 늘어 눈길을 끌었다. 재미동포 또는 한국 유학생들의 장편 중에는 1992년 LA폭동 10년 뒤를 다룬 김대실 감독의 다큐멘터리 <Wet Send: Voices From L.A.>와 한인배우 존 조가 주연을 한 대니 레이너 감독의 코미디 <해롤드와 쿠마, 화이트 캐슬에 가다>, 미군과 결혼한 뒤 40년간 미국 생활을 해온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이호섭 감독의 다큐멘터리 <And Thereafter> 등이 있다.

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이매진아시안시어터를 찾은 관객들

이외에도 2004년 선댄스영화제 선정작품인 박진호 감독의 단편 실험작 <Slowly Silently>을 비롯해 박미나 감독의 <Penis Envy>, 그렉 박과 수지 이 감독의 <Ode To Margaret Cho>, 차은희 감독의 <A Tribe of One>, 김송이 감독의 <The Practice>, 애나 상 박 감독의 <A Letter To Appa>, 박혜정 감독의 <North Korea: Beyond the DMZ>, 헬렌 조 감독의 <Helena: Helen’s Journey Through Mexico>, 김찬수 감독의 <Woman in the Attic>, 장일향 감독의 <Point of View>, 박재우 감독의 <The Arena> 등의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들이 소개됐다. 한국 작품으로는 김은숙 감독의 <빙우>와 김학순 감독의 <비디오를 보는 남자>, 김의석 감독의 <청풍명월>, 그리고 권오성 감독의 단편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이 상영됐다.

2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지난 7월15일에 개관한 이매진아시안시어터는 아시안영화 전용 개봉관으로 미디어 회사 이매진아시안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한다. 이미 10년 계약을 체결한 이 극장은 기존 극장과 차별을 두기 위해 영화관람 중 관객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을 따로 마련했으며, 스넥바에서도 아시안 스넥을 판매한다.

이 극장은 7월16일 AAIFF을 시작으로 <해롤드와 쿠마, 화이트 캐슬에 가다> 상영을 비롯해 미이케 다카시의 회고전 ‘미이케 매드니스’, 뉴욕한국영화제 등을 개최했다. 9월3일부터는 <태극기 휘날리며>(Tae GuK Gi)를 2주간 상영하며, 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2>와 <이노센스>도 개봉할 예정이다. 또 11월부터는 현재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발리우드영화들을 대거 상영할 계획이다.

한국영화의 지속적인 소개, 평단의 관심으로 이어져

미국 내 한국 개봉작은 지난 2∼3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2일 개봉된 뒤 8월26일 현재 23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이어 9월3일부터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역시 소니픽처스클래식스의 배급으로 개봉된다. 이 작품은 뉴욕과 캘리포니아주는 물론 하와이, 워싱턴, 일리노이, 워싱턴 DC, 버지니아, 메릴랜드주 등 25여개 극장에서 소개된다. 지난 5월7일 일주일간 한정 개봉된 <오아시스>는 1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지난 2년간 미국 개봉 작품으로는 <취화선>과 <집으로…> <고양이를 부탁해> <섬> 등이 있다.

한편 이같이 지속적인 미국 내 개봉과 페스티벌을 통한 소개로 이제는 미국 영화평론가들의 평론에서도 해당 감독들의 다른 작품을 예시로 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빌리지 보이스>의 에드 박은 이번 뉴욕한국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반드시 봐야 할(must-see) 작품으로 평가하면서,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언급했다.

<타임 아웃 뉴욕>의 데이비드 피어는 올 뉴욕한국영화제에서 <여섯개의 시선>을 꼽고, 이중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베스트 오브 페스티벌’로 평했다. 피어는 이와 함께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박 감독의 <올드보이>와 초기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는 작품(an earlier breakthrough film) <복수는 나의 것>을 예로 들면서, 한국영화의 크로스오버를 점치기도 했다.

이매진아시안시어터의 책임자 마이클 홍 인터뷰

“아시안영화, 미국 주류에 소개하고 싶었다”

NYKFF와 AAIFF이 개최된 이매진아시안시어터의 책임자 마이클 홍(37)은 지난 8월30일부터 미국 일부 지역에서 24시간 팬아시안 방송을 시작한 이매진아시안엔터테인먼트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이매진아시안 TV와 극장 홍보를 위해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응해준 그는 어려 보이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파라마운트와 스펠링엔터테인먼트, TBS 미디어 매니지먼트, 넬슨미디어리서치 등 미디어 대기업에서 12년간 마케팅과 배급, 프로그래밍, 리서치 등의 분야 중역진을 맡아온 베테랑이다.

-뉴욕의 대표적인 아시안영화제라 할 수 있는 NYKFF과 AAIFF를 어떻게 모두 유치할 수 있었는지.

=두 경우 모두 이매진아시안의 뉴스를 접한 영화제쪽 관계자들이 먼저 제안했다. 아시안엔터테인먼트를 미국 주류에 소개한다는 측면에서 극장의 컨셉과도 잘 맞아 영화제 호스트에 동의했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가진 단체로서 서로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TV와 라디오 방송 외에도 극장 운영에까지 뛰어든 배경은.

=어릴 때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아시아영화를 많이 봐 추억이 많다. 하지만 이젠 그런 극장이 없다(차이나타운 ‘뮤직팰리스시어터’, 2000년 폐관). 영화만큼 문화를 빨리 알릴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 극장 구입을 결정했으며, 지속적으로 운영하려면 일정 지역이나 나라를 선정하지 않고 팬아시아를 대상으로 해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갖고 싶었다.

-7월15일 극장 개관 뒤 한달이 좀 지났다. 지금까지의 반응은.

=반응은 상당히 좋다. 아시안 미디어쪽이나 뉴욕과 인근 지역의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아시안 이민자 외에 일반 관객을 유치하고 싶어서 일부러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 인근이 아닌 장소를 찾았다. 아시안영화를 좋아하는 핵심 관객은 장소와 상관없이 찾아온다고 믿었고, 예상대로 고정 관객 외에 일반 관객도 늘고 있다.

-TV 방송이 시작됐는데, 뉴욕은 없는 것 같다.

=지난 8월30일부터 오전 6시부터 24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지역은 시애틀과 캘리포니아주 벤추라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미니애폴리스, 애틀랜타 등이다. 헤드쿼터가 있는 뉴욕시와 샌프란시스코는 내년 중에 방송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MBC, SBS, CJ, 시네마서비스, 튜브엔터테인먼트, 미로비전 등에서 일부 드라마와 영화 계약을 체결했다. 이외에도 일본과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의 드라마와 영화 등도 방송된다.

-현재 미국 경제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 이에 따른 문제는 없는지.

=재단이나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자금을 해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광고유치로 운영할 계획이다. 사실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응도 좋고, 추진 중인 프로젝트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상당히 희망적이다. 지난 5월에 회사를 설립한 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직원이 4명이었는데, 지금은 60명으로 늘어났다. 약간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말까지 극장 2개를 더 확보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저지주 에지워터의 한 시어터와 이야기 중이며, 이외에도 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추진 중이다. 이매진아시안은 극장만이 아니라 TV, 라디오, 인터넷 등을 통해 크로스 프로모션의 효과를 높일 수 있어 큰 기대가 된다. 나아가서는 영화제작과 자체 영화사도 기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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