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웃기고 열정적이고 염세적인, <헬보이>
2004-09-09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음울한 미학과 순수한 낭만을 갖춘 영웅담 <헬 보이>

마이크 미뇰라의 컬트만화를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로 만든 <헬보이>는 웃기면서도 열정적이다. 바그너식 질풍노도의 요소도 강하지만 십대의 염세주의도 적절하게 들어 있다. 하늘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고 이 영화의 제목이 이름인 주인공도 수심에 차 있다.

미뇰라의 20세기 괴기담의 배경은 나치 이야기와 차르 시대, H. P. 러브크래프트, J. D. 샐린저를 섞어놓았다. 영화는 1944년 스코틀랜드의 어느 곳에서 시작한다. 쏟아지는 빗속, 총알로도 죽일 수 없는 가위손의 귀신이 이끄는 독일군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려고 바닷가에서 미친 승려 그레고리 라스푸틴(카렐 로든)의 주재로 악마 숭배를 마련한다. 지옥의 문을 열려는 그들의 노력이 실패하기 바로 전 귀여운 아기 악마가 떨어져나온다. 바로 헬보이.

뿔달린 악마가 등장하는 20세기의 영웅담

그리고 이제 현재로 도약한 영화에서, 상냥한 신비주의 학자 트레버 브룸(존 허트)이 키운 60살이 된 헬보이는 큰 턱과 가슴을 가진, 뿔은 그루터기만 남은 붉은 악마(론 펄만)로 성장해 있다. 연방수사국은 커다란 탄두리 통닭처럼 빨간 헬보이를 비밀범죄수사관으로 관리하고 있다. 물론 시간의 검증을 받은 만화의 전통에 따라 헬보이는 사춘기 십대의 정서를 갖고 있다. 뚱한 성격에 비꼬는 말을 해대며 정크 푸드를 좋아하고 예쁜 리즈 샤먼(셀마 블레어)을 짝사랑하며 괴로워한다. 우울증에 걸린 리즈는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화염을 뿜어내는 방화 인간이다.

낙관된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영화에서 헬보이는 돌아온 라스푸틴도 처리하고 그의 부하들이 뉴욕의 지하철과 박물관에 풀어둔 무섭게 번식하는 촉수 달린 괴물들도 처부순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파트너인 존 마이어스(루퍼트 에반스)와도 익숙해진다. 마이어스 역시 리즈에게 반하자 헬보이는 더 불안하다. 누군가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비기독교적으로 보이는 <헬보이>에서 “혼돈의 일곱신들”과 같은 언급을 통해 델 토로는 기독교 상징들을 첨가해놓았다. 한번은 마이어스가 “당신에겐 선택이 있어. 당신의 아버지가 그 선택을 줬잖아”라고 알려줄 때에도 시기적절한 성흔(聖痕)의 등장을 통해 HB(헬보이의 약자- 역자)는 악의 편에서 구출된다.

<엑스 맨 인 블랙>으로 요약될 수 있는 <헬보이>에는 만화적 요소가 상당히 많다. 델 토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신을 사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헬보이>의 싸구려 시적 감흥에도 예민하다. HB의 처참한 곤경들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오버헤드 숏과 함께 영화는 주로 밤에 이야기가 펼쳐지고 대개는 비가 내린다. CGI 효과는 전혀 남용되지 않았다. 델 토로는 영웅을 소용돌이치는 파란 배경의 한 빨간 점으로 보여주거나 블레어가 연기한 비극적인 몽유병 환자가 위태롭게 살아가는 걸 바라보며 일종의 음울한 미학을 만들어낸다.

멈추지 않는 사춘기적 짝사랑의 좌절과 끊임없는 괴물 살육을 지나 <헬보이>는 순수한 낭만적 환희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랑에 굶주린 변종들이 달콤한 키스의 푸른 화염 속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 사춘기에서 멀리 떨어져 너무 늙어버린 나에게조차 감동을 준다.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번역 이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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