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새벽까지 진행된 스릴러 <주홍글씨> 촬영현장
2004-09-13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금기된 욕망을 찍는다

리셉션이 한창인 연주회장 3층의 발코니. 남자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새침한 여자의 목소리. “나 생각났어. 우리 그때. 진 선생님 와인카페 개업한다고 갔었잖아. 근데 가보니까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래서, 진 선생님 기다릴까 말까 하다가 그 계단에서 했잖아….” 조금씩 굳어지는 남자의 얼굴. “한쪽 벽이 다 유리였는데… 형이 그랬지. 사람들 내려다보면서 하니까 꼭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하는 것 같다고.” 마침내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는 여자. “나… 4주 됐대.” 그 순간 건너편의 발코니에서 그들을 쳐다보는 남자의 아내. 아름다운 연보라색 드레스가 미세하게 떨린다.

8월31일과 9월1일, 전주의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주홍글씨>의 막바지 촬영이 진행 중이다. 그날 촬영분은 기훈(한석규)과 그의 단아하고 순종적인 첼리스트 아내 수현(엄지원), 그리고 기훈의 정열적인 연인이자 수현의 친구인 가희(이은주)가 수현의 첼로 연주회장에서 만나는 장면을 위한 것. 조명과 수많은 엑스트라로 가열된 실내는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그런 분주한 현장에서 을씨년스런 감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은 듯, 당당한 검은 수트 차림의 이은주는 여러 번 동선과 대사처리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약올리며 키득거리는 것처럼. 훨씬 더 싸∼한 느낌으로 가자”는 변혁 감독의 조언. 새벽 4시경이 되어서야 마침내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진다. 그러나 “다음 장면 갑니다!”라는 조연출의 목소리. 밤새야 한다는 예감이 모두에게 엄습해온다.

<주홍글씨>는 엘리트 형사인 한 남자를 둘러싼 아내, 정부, 그리고 어느 미망인(성현아), 네 사람의 어긋난 사랑과 그것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를 그리는 스릴러영화(스포일러가 있으므로 더이상의 언급은 피한다). 하지만 <인터뷰>(2000) 이후 4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쥔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가 그저 클리셰로 가득한 장르영화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틀에 완전히 맞추어 들어가는 장르영화는 아니다. 다양한 시점들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며 스테레오타입들은 모두 깨버리는 영화가 될 것이다.”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한석규에게도 <주홍글씨>는 의미가 깊다. 일체의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은 채 현장의 분주함에 휩쓸리지 않고 연기를 가다듬는 한석규에게서 ‘처음 시작하는 듯한’ 긴장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를 두고 변혁 감독은 “약하고 강한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남자”라고 말하고, 이은주는 “편한 선배지만 의외로 굉장히 섹시한 면이 있다”며 웃는다.

변혁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겉보기에는 멀쩡하나 속에는 뒤틀린 욕망이 있는, 금기, 욕심, 욕망에 대한 영화다. 불량식품이 좋지 않은 것을 알지만 그것으로 얻는 정신적인 욕망의 충족이라는 게 있지 않나. 일탈에 대한 적합한 진단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주홍글씨>는 10월 말 개봉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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