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웨딩 싱어>의 감독 프랭크 코라치에 의해 영화화된 버전의 는 필리어스 포그(에서 매혹적인 주인공 토니 윌슨으로 등장했던) 대신 그의 하인 파스포트(성룡!)에게 비중을 두는 변화를 단행했다. 고향 마을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유럽에서 동분서주하는 재치있는 파스포트가 바로 필리어스 포그의 세계일주 내기를 성사시키는 장본인이며, 위험천만한 여행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팀장 역할도 파스포트가 맡는다. 그에 따라 필리어스 포그는 원작에서처럼 냉정한 영국 신사의 전형적인 매력 대신, 실수투성이에 엉뚱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며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괴짜 발명가로 바뀐다.
두 번째로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동시대인들이 공감했을 엑조틱한 매력이 21세기에 그대로 되풀이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영화는 거꾸로 익숙한 풍광의 전형성을 이용하여 최대한 코믹한 아이콘으로 바꿔놓았다. 미래파에 가까운 그림들이 걸린 프랑스의 화실, 자유의 여신상 머리가 놓인 뉴욕의 창고, 일행들이 라이트 형제와 마주치는 미국의 사막, 자아도취적인 왕자(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스스로를 패러디하는)가 기거하는 터키의 궁전, 파스포트의 고향인 중국 시골 등이 주요 무대로 사용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의 변형은 그리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성룡의 애크러배틱 원맨쇼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그의 ‘맛보기’식 액션은 성에 차지 못하고, 스티브 쿠건의 시니컬한 에너지를 내심 바랐던 관객에게 그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포그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코믹한 ‘기표’가 될 수밖에 없는 세계 각국의 풍광은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지루한 수박 겉핥기식으로 느껴질 뿐이다. 아무것도 새롭지 않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고전의 과감한 혁신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얌전한 코미디로만 머무른 는 지극히 어정쩡하여, 차라리 그 옛날의 원작 소설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