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아싸라비아! 슬기가 간다! <몽정기2> 배우 박슬기
2004-09-16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원주에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박슬기라는 꼬마가 있었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었던 소녀는 틈만 나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온갖 음반사와 기획사의 오디션장을 기웃거리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다보면 어느덧 집으로 돌아가야 할 버스를 탈 시간이 되곤 했다. “이상하게 오디션만 가면 양옆으로 늘씬하고 꽃 같은 언니들만 서는 징크스”도 허탈한 귀가에 일조했을 터이다. 오디션으로 망한 자, 오디션으로 흥한다고 했던가. <두근두근 체인지>(이하 <두두체>)에서 이선희의 〈J에게>와 <아싸라비아 아라비아 사루비아>를 부르며 오디션장을 휘젓던 박슬기. 3500 대 1이라는 그악스러운 경쟁률의 오디션에서 인기상마저 거머쥐며 일약 <몽정기2>의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예를 들면 오늘 영어단어 120개를 시험친다라는 가정을 해요. 이건 학교 애들한테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요. 그런데 시험을 볼 지 안볼 지 애매한 상황일 때, 그걸 다른 반에서 듣고 와서 ‘음 오늘은 시험 안 볼 수도 있대. 옆반도 안 봤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나중에 책임지지 않는 아이. <두두체>의 슬기는 그런 설정이에요.” 이것이 팔도모창대회에서 느닷없이 발탁되어 시트콤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여고 3년생 박슬기가 구상했던 ‘슬기’였다. PD에게는 그런 설정에 대해 내색도 안 했던 박슬기는 ‘솔직’하다는 말보다는 ‘객관’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높은 톤으로 말하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그녀의 말투처럼.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식당에서 일하며 고생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연극반, 체육부 차장(응원단장), 학교 MC, 학생회 부회장 등을 하며 스타의 꿈을 키워가는 일이 녹록지는 않았을 터. “난 별로 힘들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는데 걱정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런 연민이 반갑지만은 않았다”라는 표현은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함을 엿보게 한다.

“<몽정기2>에 참여하기 전에는 사실 ‘자위’가 뭔지도 몰랐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인 또래들이 있을 테고 그렇다면 공감을 얻지 않을까요?” <몽정기2>의 첫 리딩에서 정초신 감독은 그에게 목소리 톤이 무조건 강하기만 하다고 타박했다. 그는 다음 리딩에서 바로 톤을 조절해서 사람들의 눈을 커지게 만든다. 오디션 때 자유연기로 잃어버린 점수를 개인기로 단숨에 반전시켰듯이. 학교 다니던 시절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다섯번뿐이라는 박슬기는 이제 객석이 아닌 스크린에 비쳐지는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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