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속편의 원칙을 지킨 영화,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 LA 시사기
2004-09-16
글 : 신미나 (자유기고가)

슬리퍼 히트작의 속편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 LA 시사기

할리우드의 속성이란 한번 돈이 되기 시작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2년 처음 발표된 <레지던트 이블>은‘슬리퍼 히트’(Sleeper hit)를 한 영화였다. 슬리퍼 히트란 저예산으로 싸게 만들어져 대규모의 프로모션을 거치지 않으나 뜻하지 않게 흥행작으로 떠오르며 블록버스터급으로 신분 상승하는 영화들을 지칭하는 말. 싸구려 액션영화로 시작했으나 대규모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록키>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2년 전 저예산 B급 사이파이(sci-fi) 좀비호러영화로 만들어진 <레지던트 이블>은 원작 게임의 인기와 영화화된 작품의 완성도에 힘입어 뜻하지 않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전세계 6300만달러의 수익을 낳았다. 물론 1편의 내러티브 자체가 후속작을 예견하며 끝나기는 했지만 불과 2년 뒤 전작의 몇배가 넘는 예산으로 후속작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와 같은 성공에 힘입은 바가 크다. 8월29일 저녁 LA 센추리시티 AMC에서 처음 선보인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는 무릇 속편이란 더 크고 더 나은 액션과 스펙터클, 그리고 특수효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블록버스터 속편의 원칙에 충실한 작품이다.

전편보다 복잡한 이야기와 고난도의 액션 스펙터클

<레지던트 이블> 1편의 액션 무대가 엄브렐러 컴퍼니의 한 건물에 제한되어 있었다면 2편에서는 라쿤 시티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된다. 넓어진 액션 무대를 채우는 것은 수적으로 더 많아진 좀비들과(한 도시의 시민 모두가 좀비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각양각색의 무기들, 마지막의 원자폭탄까지 동원된 다양한 폭발장면, 그리고 헬리콥터, 오토바이 등 각종 운송수단을 동원한 고난도의 액션 스펙터클이다. 교회, 학교, 시청, 공동묘지, 길거리, 다리 등 도시 곳곳을 가득 메운 수백, 수천 좀비들의 군상과 죽지 않으면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사방이 통제된 도시 안에서의 절박함이 주는 공포가 가히 ‘아포칼립스’라는 부제와 어울린다.

형광빛과 금속성의 날카로움, 자본과 첨단기술이 주는 세련된 이미지가 전편이 추구했던 영화의 분위기라면 속편은 어둠침침하고 으슥한 버려진 도시의 눅눅한 밤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이룬다. 이런 암울한 도시의 분위기는 모두 캐나다 토론토와 부근 해밀턴에서 연출됐다.

전편에 비해 복잡해진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전편의 감독이었던 폴 W. S. 앤더슨의 시나리오에 기인한 바 크다(물론 스토리에 대한 이해는 영화의 처음과 끝을 볼 때만 필요하다. 영화 중간에는 그저 액션을 즐기는 데 집중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앤더슨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를 감독하느라고 이번엔 시나리오만 쓰고 메가폰을 신인 알렉산더 위트에게 넘겨줬다. 위트는 <블랙 호크 다운> <글래디에이터> <본 아이덴터티>와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세컨 유닛의 액션 담당 디렉터로 일하다 <레지던트 이블>로 데뷔하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가 외국 출신이라는 것. 러시아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온 영화의 히로인인 밀라 요보비치는 물론이고 악덕 시장 역의 토마스 크레치만 또한 유럽 출신이다. 전직이 동독 올림픽 수영선수였던 그는 영화 속에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억양이 분명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비디오게임의 캐릭터인 질 발렌틴을 연기한 시에나 길로리 또한 영국 배우. 영국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의 바람피우는 여자친구로 나왔던 이 배우는 끈없는 튜브톱에 미니스커트, 검은 단발머리로 게임 속 캐릭터를 스크린에 옮겨냈다.

게임 속 괴물 니메시스, <에이리언4> 연상시켜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게임 마니아들의 기대는 과연 속편이 니메시스라는 게임 속의 괴물을 어떻게 형상화했느냐에 쏠려 있다. 특수분장팀은 전직 경찰이자 보디 빌더였던 매튜 테일러의 몸에 실리콘, 폴리우레탄, 가죽 그리고 금속을 이용, 첨단 지능과 막강한 무기로 무장한 괴물 니메시스를 탄생시켰다. 속편에서 앨리스에겐 니메시스야말로 좀비보다 더 무서운 적임에 틀림없다.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둘 사이의 숙명의 대결 도중 니메시스가 사실은 전편에서 앨리스와 함께 살아남았던 동지 맷이 돌연변이한 괴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니메시스를 죽이려 할 때 앨리스는 울퉁불퉁한 괴물의 살점 속으로 살짝 비친 그의 눈빛을 통해 이를 알아챈다. 이 장면은 <에이리언4>에서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우주선 안에서 자기 자식격인 에일리언과 맞닥뜨리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엄마, 나한테 왜 그래…”라고 말하는 듯, 우주의 저 어둠 속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사그라지던 순간 에일리언이 던진 그 원망과 슬픔이 담긴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다.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시고니 위버의 만감이 교차한 듯한 표정 연기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니메시스의 눈빛과 “미안해”라고 말할 때의 밀라 요보비치의 연기는 그런 감정의 깊이와 아픔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속편에서 앨리스는 티-바이러스로 인해 더욱더 강력해진 인간병기로 표현된다. 모든 액션연기를 스스로 소화해내려고 고집하던 밀라 요보비치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주요 몇신의 고난도 액션은 스턴트맨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웬만한 액션은 스스로 소화해내며 연기에 몰두하는 자세를 보였다. 명백하게 암시된 3편에서 우리는 티-바이러스로 인해 좀더 강력한 인간 병기이자 슈퍼우먼으로서의 앨리스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3편에서 보일 앨리스가 가진 강력한 파워는 각종 킥과 권총술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조정하는 괴기적인 초능력적 파워일 듯하다. 앨리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엄브렐러 컴퍼니를 다시 탈출할 때 보이는 초능력적 힘은 마치 한국형 귀신영화를 보는 것처럼 관객을 오싹하게 만든다. 3편에서 괴기적 파워를 가진 앨리스를 다시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는 2편의 성공에 달려 있다.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는 9월10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다.

앨리스 역 밀라 요보비치 인터뷰

코너에 몰릴수록 맞서는 게 내 성격”“담배 피워도 될까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입장한 밀라 요보비치의 첫마디다. 흡연자들에게 적대적인 LA란 도시도 미모의 여전사에게만큼은 약한가보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담배 끊긴 끊어야 하는데…”라는 흡연자들의 뻔한 레퍼토리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예기치 않게 가슴 성형수술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그녀 탓에 정작 영화에 관한 깊이있는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운동과 몸관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벌떡 일어나 운동의 여러 동작을(말타기!) 시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밀라 요보비치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연기, 노래, 작곡, 의상 디자인까지 섭렵하는 다재다능한 끼와 에너지, 그것이 감독을 포함해 같이 출연한 배우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그녀의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외모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주위에서 예쁘다고 하면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모란 자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배우였던 어머니가 어렸을 적 항상 나에게 너의 외모는 엄마 아빠로 인한 결과물일 뿐이다, 예쁘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가르치셨다. 미모란 순간적인 것이고 언젠가 신이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액션영화에 많이 출연해왔는데, 좀더 감정이 개입되는 캐릭터를 하고 싶지 않은가.

물론 액션을 좋아하고 인정도 받고 있지만 또한 그것이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 그 누구도 지금 나에게 로맨틱영화의 주연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싶어서 되도록이면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에 번갈아 출연하려고 노력한다. 곧 <페이드 아웃(Fade Out)>이라는 영화에서 빌리 밥 손튼의 부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배우로서 어두운 캐릭터에 끌리는가? 자기 자신 안에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물론 삶에 관해 철학적이고 진지해질 수 있지만. 내가 어둡다기보다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싶은 쪽에 가깝다. 내 안에 앨리스가 튀어나온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1981년에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왔다. 형편이 어려워서 모두 일을 해야 했고 처음에 왔을 때 나는 영어를 못했다. 다섯살 때 동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괴롭힘을 당할 때가 있었다. 코너로 몰렸던 나는 벌떡 일어서서 그 애들을 향해 러시아어로 꺼지라고 바락바락 대들며 소리질렀다. 이때 내부의 앨리스가 튀어나왔던 게 아닐까. 코너에 몰릴수록 수그러드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맞서는 게 내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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