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 릴레이] <80일간의 세계일주>, 김소영 영화평론가
2004-09-21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서구로 간 ‘중국 하인’ 성룡, 무술 대신 몸고생만

“세계화란 월가가 미국 정부의 힘을 빌려,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 힘을 전 세계에 발휘하려는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림 아래 진행되는 세계화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던 1863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은 신문에 를 연재한다. 영국인 필로스 포그(스티브 쿠건)가 프랑스 하인 파스파투와 함께 만들어가는 이 글로벌 여행기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926년 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처음 등장한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영화나 TV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하인 대신 홍콩 출신의 배우 성룡이 중국 하인으로 등장하는 디즈니가 제작한 2004년의 는, 예의 미국적 세계화 시대에 유럽이 주도한 19세기 세계화 시대를 이상하게 향수하고 있다. 또, 성룡을 불러들여 액션을 선보이고, 왁자지껄한 행위 지향적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성룡은 과학화, 세계화의 상징인 포그와 거의 정반대의 인물로 전근대적 중국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룡이 개명천지 백주대낮인 런던에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여전히 부처를 숭배하며 농사를 짓고 호랑이 무술을 연마하는 자신의 마을 제단에 놓여있던 비취옥 부처를 찾기 위해서다. 이러한 설정은 얼마 전 개봉했던 <옹박>과도 유사하지만, 그 영화와의 차이는 이 모든 모험들이 나중에 가 결국 봉사하게 되는 것은, 그 모험으로 인해 보다 개화하게 되는 모던 유럽이라는 것이다.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감독이나 배우들은 그야말로 초국적 캐리어 관리에 들어갔다. 그결과 유덕화는 장이모의 <연인>에서 무정부적 유목적 주체가 배회하던 강호는 간데없고, 국가와 조직 오로지 그 양자만 있는 중국 대륙에서 죽도록 고생하게 된다. 정말 보람도 없이.

또 성룡은 <턱시도>나 에서 자신이 연마한 멀쩡한 무술 대신 서구의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놓은 턱시도나 열기구 안에 들어가 죽도록 고생한다. 진정 보람도 없이. 원시적 동양 남자의 육체를 서구식 기술로 재단련시키고야 말겠다는 듯, 위의 두 영화는 나이 들어가는 성룡의 몸을 한편으로는 곡예사처럼 정신없이 놀리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의 기술 안으로 포섭한다.

여하간, 영국이 인도와 싱가포르,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를 식민화 했던 시기, 영국의 괴짜 발명가 포그는 80일간의 기한을 정해 세계 여행을 떠난다. 영국 황실 과학 아카데미는 세계를 재패한 영국에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고 의기양양해 있고, 거기다 부패해 중국의 보물을 노린다. 포그가 머리로 생각하는 일들을 몸으로 실험해 줄 사람이 필요할 때 등장하는 사람이 성룡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모니크 라로슈(세실 드 프랑스)가 영감을 받고 싶다며 이들의 모험에 동행한다. 영국, 프랑스, 중국 연합군이 19세기 세계의 지도를 그려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디즈니! 이 모든 것을 추수해 전 세계 남녀노소가 볼 수있는 희희낙락 가족 영화로 말끔하게 포장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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