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영웅 대열에 홀로 선 할리 베리의 <캣우먼>은 만화 <배트맨>에서 생명을 얻고, 팀 버튼의 <배트맨2>에서 미셸 파이퍼의 매력과 더불어 생동감을 얻었던 자신의 전사를 충실히 이어받는다. 다만, 악의와 선의 사이에서 모호했던 이미지를 살짝 받아들이고는 선의로 악의를 평정한다. 고담시 재벌의 어리숙한 여비서였다가 비리를 알아버린 탓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뒤 캣우먼으로 변신한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 베리의 <캣우먼>은 활력없는 여비서에서 예술가적 재능을 지닌 그래픽디자이너로 탈바꿈하고, 악덕 기업은 젊어지고 예뻐지려는 여성의 욕망을 모종의 음모로 착취하려는 화장품 회사로 업종을 구체화했다. <캣우먼> 캐릭터에 입체감을 입히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낡은 구도를 끌어들인다. 할리 베리의 최종적인 적은 영원한 미에 집착하고 마침내 기이하게 획득한 샤론 스톤이다. 비록 고답적이긴 하지만 난처한 건 흑백 여성 혈투에 있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캣우먼>의 액션은 <스파이더 맨>의 성공이 날고 싶은 욕망을 시원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캣우먼이 빌딩에서 빌딩으로 날아다닐 때, 건물 내부에서 서커스에 가까운 절묘한 몸놀림을 보여줄 때, 시대착오적인 CG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망가뜨린다. 할리 베리가 캣우먼 의상을 입지 않았을 때가 더 멋지다는 것도 패착이다. 그녀는 자신이 푹 빠져들었던 남자를 팽개칠 만큼 쿨한 매력을 갖게 됐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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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영웅의 조연, 섹시하고 독립적인 단독자로 나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조각가가 왜 그리 잔혹하게 고양이 연쇄 살해에 나서는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짐작건대, 그는 좀체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의 개인주의를 혐오하거나 고양이의 불온한 눈빛에 불길함을 자극받은 건 아닐까. 하지만 고양이와의 대화법을 체득한 나카다가 마주치는 고양이들과 성심성의껏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고양이의 내면은 다정다감하고 사랑스럽다. <캣우먼>은 이렇게 전형화됐다고까지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끌어온다. 자신의 소심함에 쩔쩔매던 여성이 고양이의 혼으로 새 생명을 얻는 순간, 그녀는 규범에 속박받지 않는 ‘고양잇과 여성’이 된다. 길들여지지 않은 본능으로 꿈틀대며 날카로운 공격성을 순간적으로 드러낸다. 욕망은 통제될 필요도, 여지도 없다. 수줍은 미소와 너그러움을 여전히 지니고 있어 이따금 두 본성이 대립되지만, 결국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통일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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