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황금기의 풍속화 연상시키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빅 피쉬>보다 좀더 공감할 수 있고 덜 과장된 역사적 환상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7세기의 십대 소녀 주인공 그리트(스칼렛 요한슨)의 양파 까는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페르난드 브로델이 주창한 ‘일상생활의 구조’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수수하게 머리를 덮은 젊은 아가씨가 부엌 창문으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야채를 써는 모습에서 네덜란드 황금기의 풍속화를 떠올린다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리라. 그리트라는소녀가 델프트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집에 하녀로 왔다가 그의 최고 명화들 중 하나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혹은 <머리 덮개를 한 소녀>, 비공식적으로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알려진 작품의 모델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들려주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베스트셀러 <진주 귀고리 소녀>를 다큐멘터리 작가 피터 웨버가 자신의 첫 극영화로 만들었다.
절제를 아는 배우, 스칼렛 요한슨
유작이 드문 베르메르는 또 다른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사후에 인정받은 천재로서 쌍벽을 이룬다. 베르메르의 재평가가 후기 인상주의 시기에 시작되었고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그의 포토리얼리즘에 대한 인식 그 자체가 포스트 포토그래프 시기에 시작되어서인지 나오는 남자들이 별나게 거의 현대적이다. 타고난 감식안을 지닌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시끄러운 집에 하녀로 와 주인의 화실에 들어서는데 거기엔 그의 그림들에 나와 지금은 유명해진 많은 소도구들과 장치들이 가득하고 또 다른 논쟁의 대상인 그의 비밀 무기 카메라 옵스큐라도 있다.
그리트의 창문을 닦으려는 세심한 동작이 베르메르에게 영감을 주어 <물주전자를 든 여인>이 만들어지고 곧 그리트는 베르메르를 위해 염료와 유약을 만들며 그림 구성에 대한 제안까지 하게 된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식이 아닌 브로델식의 액션들이 알렉상드르 데플라의 과장된 배경음악을 통해 강조되는데 눈송이 내리듯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서양 문화의 진귀한 걸작을 낳게 될 모의가 가족 내에서 복잡하게 얽혀들어간다. 델프트는 인상적으로 재현되고 남들이 무식하다고 여기는 그리트는 완벽한 ‘일상’의 주제가 된다. 베르메르(콜린 퍼스)는 말수가 적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좋은 혈통을 가졌을 법한 화가는 울고 짜는 둔한 아내(에시 데이비스), 좀스럽게 가사를 돌보는 장모(주디 파핏), 많은 아이들, 함부로 말을 해대는 말썽꾼 후견자 반 라이번(톰 윌킨스)에 둘러싸여 있다. 아첨꾼 반 라이번은 그리트에게 눈독을 들이지만 조심스런 소녀는 두건도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조용한 영화인지라 베르메르가 그리트의 풀어헤친 황갈색 머리결을 몰래 바라보는 순간이 그야말로 지극히 신성한 순간이 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결국 그만의 빛과 색깔 사용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작품에 이름을 준 보석이 사실은 세공된 백랍 목걸이라고 한 동료가 주장하는 걸 보면 찬반의 교차를 피할 수 없는 과감한 시도다. 상상 속 역사의 주제를 연기하는 요한슨은 잦은 클로즈업을 상당한 권위로 소화해낸다. 크게 뜬 눈과 벌어진 입, 말없이 애원하는 모습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보다 더 지켜볼 만하다.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배우들 속에서 절제하는 그가 빛난다.
(2003년 12월10일.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