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해외신작 <비포 선셋>
2004-09-2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 그 9년 뒤

제시와 셀린느는 비엔나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여섯달 뒤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리고 영화는 어떤 답도 주지 않은 채 멈추어 선다. 해가 뜨는 순간까지,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을 보낸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몇년이 지나서야 두 젊은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링클레이터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이메일로, 전화로, 때로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함께 대사를 써내려간 <비포 선셋>은 삶과 사랑과 온갖 자질구레한 일상에 관한 매혹적인 대화록과도 같다.

작가가 된 제시(에단 호크)는 홍보 여행 도중 파리 한 서점에서 사인회를 연다. 셀린느가 살고 있는 도시에 온 그는 기차에서 만났던 그녀를 떠올리다가, 정말 눈앞에 나타난 셀린느를 만난다. 머뭇거리다가 마음을 터놓기 시작하고, 9년 전처럼 친밀하게 수다를 주고받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제시는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해두었고, 그들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늦은 오후의 85분뿐이다.

<비포 선셋>은 몇분에 불과한 플래시백을 제외하면 상영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영화다. 카페와 공원, 센강의 유람선, 셀린느의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이야기하는 것 뿐이지만, 그 사이 성숙해진 감독과 배우들의 생각이 녹아들어간 그 대화는 순간순간 웃음을 주고 마음을 건드린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밤을 보냈는데, 다른 로맨스가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라는 셀린느의 한탄은 삼십대 중반에 이른 냉소적인 여인의 현실 그대로다. 로맨스에 회의를 느낀다는 줄리 델피와 그래도 사랑은 있어야 한다는 에단 호크. 그들은 자기 모습을 캐릭터에 실어냈지만, 그들이 서로 무척 달라도, <비포 선셋> 끝부분은 여전히 로맨스를 암시한다. 15일 만에, 늦은 오후가 배경인 탓에 하루에 몇 시간만 촬영하면서, 경쾌하게 완성한 소품. 그러나 <비포 선셋>은 오히려 작아서 더욱 사랑스럽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