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골격이 장대하고 운동실력이 좋았다. 무용을 했던 어머니는 그를 임신한 뒤부터 유난히 극장 출입이 잦아졌다. 그리고 35년 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절반씩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슈퍼스타 감사용>을 만든 김종현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의 데뷔작이 스포츠영화인 것은 운명의 당연한 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81회 촬영에 순제작비 40억원이라는 수치가 나타내듯 <슈퍼스타 감사용>은 신인감독이 감당하기엔 너끈치 않은 프로젝트였다. 1승이라는 꿈을 향해 공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던졌던 감사용처럼, 관객과의 전면적 공감을 위해 4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공들여 갈고닦아나갔던 김종현 감독으로부터 데뷔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 영화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군대 시절, 나는 의무실 소속이었는데, <씨네21>에 실린 바(469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슈퍼스타 감사용 제작기’)와 정반대로 우리 의무실은 축구를 굉장히 잘했다. 나 또한 축구를 상당히 잘하는 편이었다. 물론 우리 중에도 운동을 못하는 친구가 있었고, 나는 그 쫄따구에게 “니가 감사용이냐?”라고 농을 던지곤 했다. 그러면 “감사용이 누구냐”는 답이 돌아왔고, 나는 감사용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얘기해주곤 했다. 패전처리용으로 등장했다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곤 했던 특이한 이름의 선수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과연 그가 그렇게 실력이 나빴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설사 그가 야구를 잘 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그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한번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됐다.
구체적인 영화화는 어떻게 이뤄졌나.
중앙대 영화과를 졸업한 뒤 <퇴마록> 연출부를 했다. 그리고 두 작품 정도 했는데 모두 엎어졌다. 그뒤 <로드무비>의 조감독을 맡았는데, 준비하던 중 윤상오 프로듀서에게 시놉시스를 전한 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당시엔 직장에서 야구를 하던 사람이 프로에 와 패전처리투수가 돼 박철순과 맞대결을 펼친다, 는 큰 줄기만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의 살은 어떻게 붙였나.
일단 창원으로 찾아가 감사용 선생을 만났다. 본인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면 부담스러워할까봐 ‘영화 공부하는 사람인데 언젠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어서 이야기 좀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게 2000년경인데, 그뒤 경상남도로 헌팅 갈 때마다 찾아뵀고 명절마다 전화를 드렸다. 차츰 벽이 허물어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엔 그의 소개로 원년 멤버들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다.
본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감사용 선수의 반응은 어땠나.
“꼭 내 얘기를 해야 하나”라고 말하더라. 곤란하다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극장>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사실, 어느 정도는 그랬다. 애초 시놉시스에서는 다른 선수 이름뿐 아니라 감사용이라는 이름까지도 가명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인데 가명을 사용하면 몰입도와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도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선수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지만, 만들어낸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여자 팬티 에피소드는 야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종목의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공통되는 터부라고 들었기 때문에 사용했다. 팬티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인호봉 선수는 나중에 그 장면 보고서 “저건 나랑 똑같네. 내 성격이 잘 나타난 것 같아”라고 말해줬다. 어쩜 나를 위안해주기 위한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양승관 선수의 경우 어떻게 보면 악역일 수도 있는데, 기분 나빠하지 않았나.
감사용 선수와 양승관 선수는 실제로 룸메이트로 친했다고 한다. 양승관 선수는 잘생겨서 여자들에게 엄청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멋진 이미지의 인물을 감사용과 대비시키고 싶었다. 나중에 감사용 선수가 양승관 선수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기가 영화화된다고 하면 실제보다 더 멋진 모습을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감사용 선수는 나중에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고 더 적극적이었다. 더 코믹해야 하지 않나, 멜로도 더 나와야 하지 않냐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야 흥행이 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는 매일 절에 가서 기도한다고 했다. 영화가 잘돼라고 응원하는 것 같다.
야구 경기장면을 실제 배우들이 연기했다.
두 종류의 오디션을 가졌다. 연기 오디션과 야구 오디션. 그렇게 선발된 연기자 중 허운 선수 역할을 했던 배우는 프로야구 2군 출신이었고, 김무관, 김구길, 오문현 선수 역 배우도 초등학교 때 야구선수로 뛴 적이 있었다. OB팀 선수들은 실제 야구선수 출신이 많았다. 그렇게 선발된 인원들은 2003년 10월부터 선수 출신 배우들의 지도하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경기장면을 찍는 게 힘들지 않았나.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 경기장면은 서울 목동구장에서 한달 동안 매일 출근하듯 찍었는데, 우리끼리 야구 경기도 하는 등 즐거운 일이 많았다. 힘든 점이 있었다면 촬영스케줄을 관중 엑스트라에 맞춰서 찍는 것이었다. 엑스트라는 많으면 500∼700명도 왔지만, 어떤 날은 50명밖에 오지 않았다. 앵글에 관중이 많이 걸리는 신을 몰아찍다 보니 6회 장면을 찍다가 갑자기 9회의 숨막히는 순간을 찍어야 했다. 감정조절이 쉽지 않았다.
은아가 지하철을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장면 등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관객은 영화의 디테일을 정확히 이해 못하는 것 같더라.
기본적으로 연출자의 불찰일 것이다. 그 장면의 경우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이런 것을 설명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기차라는 공간의 느낌이 좋았다. OB 1루수 신경식이 다리를 죽 찢어서 송구를 받는 특유의 폼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배우는 1년 전부터 다리 찢기 연습을 했는데 어떡하냐.
박철순과의 대결이 아니라 감사용이 1승을 올리는 순간을 영화화하는 것은 생각 안 해봤나.
사실,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영화는 승리라는 것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의 모습과 그 순간을 담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떤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를 동정하는 투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 승리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도전하는 사람이기에 불쌍하게 보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오히려 행복한 사람들이다.
데뷔작이다보니,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다.
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당연히 있다. 그런데 투수가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한순간의 실투로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경기가 끝나고 나서 그 공을 왜 그렇게 던졌을까, 후회해도 별 의미는 없다. 그때 최선을 다했다면 말이다. 나로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