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른바 ‘1등 사윗감’의 조건은 비슷하게 마련이다. 기골이 장대한 변강쇠 스타일로 ‘뭘해도 마누라 먹여 살릴 만한 놈’이거나, 변호사나 의사, 정승판서같이 어디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직업을 가진 총각이라면 별 걱정 없겠는데, 여기 이 남자, 시작부터 영 불안하다. 왜소해보이는 체격에 작은 키, 게다가 직업은 간호사. <미트 페어런츠>에서 벤 스틸러(35)가 연기하는 그렉 퍼커는 ‘부모님을 만나라’는 미션을 완수해내기에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라는 사윗감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장인이란 사람(로버트 드 니로)은 유별난 딸 사랑에, 전직 CIA요원으로 의심이 하늘을 찌른다.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할머니의 유골단지를 깨트리고, 장인이 애지중지 하던 애완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시작부터 삐꺽거린 사흘간의 ‘불안한 동거’는 가면 갈수록 꼬여갈 뿐이다. 하긴 그는 성부터 ‘엿 같은’ 퍼커(Focker)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가 ‘매력없음’은 단지 장인들 눈에나 그런 것. <미트 페어런츠>의 팸(테리 폴로)에게나 <키핑더페이스>의 안나(제나 앨프만),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메리(카메론 디아즈)에게 벤 스틸러는 고철교정기마저 사랑스러운 매력남이다. 언뜻 왜소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근육질의 단단한 몸매며, 초록색의 깊은 눈동자.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빛나게 하는 건 <세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나 <벤스틸러 쇼>로 연마된 재치있는 말솜씨와 쿨한 매너다. 전설적인 코미디 콤비 제리 스틸러와 앤 미라 사이에서 태어난 벤에게 코미디언의 피가 흐르는 건 당연한 일. “나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빌 머레이, 알버트 부룩, 특히 스티브 마틴! 그는 나의 우상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나는 코미디가 내 세계가 아님을 알았다. 나는 감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영화감독.” 10살 무렵부터 슈퍼 8mm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던 벤이 선택한 1994년작 <청춘스케치>는 어린 시절 그가 원했던 만큼 ‘심각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코미디언 제리 스틸러의 아들’이나 ‘TV라이브쇼 배우’로 불리던 벤을 드디어 영화감독 벤 스틸러로 불리게 만들었다. 위노나 라이더, 이단 호크 외에 벤 스스로도 광고회사의 세련된 여피, 마이클로 출연하기도 했던 <청춘스케치>는 발랄한 MTV적 감성과 쿨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청춘들로 충분히 사랑스러운 영화가 되었다. 2년 뒤 선보인 <케이블 가이>는 배우인 짐 캐리와 감독인 벤 스틸러, 모두에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졸작이 되었지만.
잠꾸러기 벤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벤, 가서 쉬어라, 그리고 시간이 나면 낮잠을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말이 맞았다. 혹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 잠을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명쾌해진다.
나의 아버지, 제리
아버지가 <사인펠트>에서 얻은 인기를 나는 죽을 때까지 얻지 못할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 중엔 제리를 단지 벤 스틸러의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다. 비교당하지 않나고? 나와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코미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비교한다는 건, 난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