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저항의 로커, 영화를 찍다, <색을 보여드립니다>
2004-10-0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색을 보여드립니다>로 PPP 찾는 조선족 로커 출신 최건 감독 서면 인터뷰

최건은 붉은 머리띠로 눈을 가리고 천안문 광장에서 노래하던 모습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조선족 로커다. 최건의 노래 <일무소유>는 솔직하다는 이유만으로 선동적이었고,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 콘서트를 위해 한국에 온 적도 있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오랫동안 부모의 땅에서 잊혀졌던 최건. 그가 첫 번째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이 되어 올해 부산영화제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를 찾아온다. “내 마음속에만 존재해서 나 자신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 <색을 보여드립니다>. 우수한 아시아 프로젝트들이 투자와 배급 경로를 찾는 PPP에 오기 전, 최건은 제작자인 필립 리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함께 조금 일찍, 글로 적은 답변을 보내왔다.

최건은 몇년 전부터 영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베이징 젊은이들의 현재를 기록한 장위안의 영화 <북경잡종>에 록가수로 출연했고, 7년 뒤인 2000년엔 장원의 <귀신이 산다>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마흔셋, 딥 퍼플과 공연을 할 정도로 확고하게 명성을 쌓은 뮤지션이, 새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건은 “내 노래는 모두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영화는 조금 더 긴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는 영화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더 깊이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까지, 다른 길을 걸어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으로부터 태어난 영화. 최건의 뮤지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하나의 노래가 세개로 변주되고, 세개의 삶이 그 노래 위에 실리는 뮤지컬이다.

세 젊은이의 고민을 노래하는 뮤지컬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세 젊은이의 인생을 <잃어버린 계절>이라는 노래로 묶는 영화다. 노란색과 붉은색, 푸른색이 그 젊은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대변하는 색채. 노란색을 부여받은 여가수 진은 오직 <잃어버린 계절>을 부를 때만 그 영혼을 느낄 수 있다. 그녀에게 노란색은 햇살과 온기를 의미한다. 모험을 좋아하고 언제나 한계를 향해 돌진하는 레이는 붉은색의 남자다. 그는 열정적이지만, 위험에 이끌리고, 결국엔 파멸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푸른색의 남자는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 죽어가는 비극에 처하지만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어머니를 만나면서 균형을 회복한다. 이 이야기에서 푸른색은 힘과 지혜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 장위안 감독의 <북경녀석들>은 최건과 그의 친구들을 담은 영화였다. 1993년작은 <북경녀석들>은 중국영화의 6세대를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최건은 색채가 갖는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관계없는 개인적인 느낌만을 담았다. 4년 전부터 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한 최건은 “붉은색은 열정과 모험, 노란색은 휴식, 푸른색은 영혼과 지성”이라고 말했다. “내 영혼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나는 등산가와도 같다. 정상에 이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나는 그저 정상에 오르기만을 원한다.” 그리고 세 가지 색 위에 흑백으로 살아온 부모 세대의 기억이 덧칠된다. <색을 보여드립니다>의 프롤로그가 되는 문화혁명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까지 유전자 같은 패배감을 물려준 사건이었다. 최건은 “내 부모 세대와 내 세대는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그들 자신부터 두려워한다”고 했고, 어쩌면 그 때문에 프롤로그는 무채색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최건은,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모든 세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특히 젊은 시절 우리 부모 세대를 위한 영화”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최건과 크리스토퍼 도일은 <색을 보여드립니다>를 베이징과 그 부근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홍콩과 중국,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할리우드영화에도 여러 차례 프로듀서로 참여한 필립 리가 이 영화의 제작자. 저항이라는 이미지도, 조선족이라는 핏줄도 부인하고, 오직 자유만을 강조하는 최건은 정말 국경과 언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프로젝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이야기”인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그저 서로를 좋아해서” 만난 세 남자와 함께 부산에서 그 단서를 보여줄 예정이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최건의 영혼에 이끌렸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왕가위뿐만 아니라 장위안, 펜엑 라타나루앙, 박기용 등 다양한 아시아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다.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그는 영화보다 사람을 보고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모험가다.

최건은 영화를 처음 찍는 사람이다. 어떻게 그와 함께 일할 결심을 했는가.

나는 최건의 영혼에 이끌린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사랑의 고백, 조금 다른 우정의 표현이 될 것이다. 최건과 나처럼 같은 종류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를 멀리서 존중하거나 그에게 사랑과 에너지를 쏟아붓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세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촬영감독에게는 제약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최건과 내가 색채에서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영웅>도 몇 가지 색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이번보다는 좀더 작위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느낌은 있지만 색을 좀더 공부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최건과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 알고 있다. 최건의 연출 태도는 매우 힘있고 상징적이다. 아마도 결국엔 우리가 고른 공간 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색이, 적절하게 채워질 것이다.

최건은 <색을 보여드립니다>가 자신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뮤지컬영화라고 말했다. 당신도 그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최건 같은 뮤지션과 일하다보면 멋진 재즈를 연주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메인테마, 잼 세션, 솔로…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카메라를 고정하거나 움직일 거고, 심지어 카메라의 존재 자체를 잊을 수도 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그런 스타일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인 영화다. 나는, 영화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는다. 촬영을 시작하고 몇주가 지날 때까지도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왕가위는 시나리오도 없지 않은가.

당신은 공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어떤 곳에서 찍을 계획인가.

아마도 중국 본토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는 중이다. 내가 펜엑 라타나루앙과 찍은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이나 내 대부분의 영화들은 공간이 또 하나의 캐릭터인 영화였다. 최건과 나는 매우 가깝기 때문에, 적절한 공간을 찾으면 같은 반향을 느낄 것이다.

프로듀서 필립 리“영화에 들어갈 노래를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

필립 리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참여하기도 했던 프로듀서다. 주로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와호장룡> <영웅>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고, <툼레이더2> <스파이 게임>의 로케이션을 책임지기도 했다. 필립 리는 자신의 회사 옥토버픽처스를 세워 텔레비전과 영화, 광고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시아 외부로 세일즈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상업적인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됐는가.

하루는 크리스토퍼 도일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는데,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도일이 술을 마다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며칠 뒤 그가 최건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프로젝트는 당장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베이징에 있는 최건의 스튜디오에 가서 이 영화에 들어갈 노래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최건은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재능과 취향, 능력도 신뢰한다.

제작비와 배급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제작비 150만달러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아시아 관객을 주요 대상으로 삼겠지만, 이 영화는 유럽과 미국시장에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나는 우리가 뭔가 다르고 특별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 국적과 상관없이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PPP가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도 전세계에서 온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나 역시 몇년 전에 PPP에 참석했다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리고 PPP는 좀더 넓은 세계시장의 관심을 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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