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대도 할 수 없다. 원빈의 인터뷰 기사들은 대개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지를 수줍게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독자들은 지겹겠지만 기자들도 난감하다. 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기자들이 (성별에 관계없이) 얼마나 그 미모에 현혹되어 있는지. 읽는 이가 눈치채고 키득거린대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웃겨요. 꽃미남, 미소년, 이런 말들을 자주 듣죠. 아마도 외모 때문이겠죠”라는 자조 섞인 원빈의 대답에서 아차 싶었다. 수백번 들은 질문을 또다시 던져대는 기자가 우습기도 했을 테다.
지겹대도 할 수 없는 건 또 있다. 대체 그 영화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지 않고서는 인터뷰를 시작할 수가 없는 게다. 코미디 프로에서 그의 연기가 패러디되고, 천만 관객이 그를 ‘내 동생’이라고 여기게 만든 그 영화 말이다. “맞아요. 고민이 있었죠. <태극기 휘날리며>가 저에게는 새로운 계기와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작품선정에 굉장히 고심을 했었어요. 그렇지만 마음 편하게 먹으려 했어요. 뭐 내가 잘할 수 있고, 내 나이로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요.” 도발적인 선택이거나 안전한 선택이거나. 어쨌거나 <우리형>에서 또다시 동생 역할을 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형>에서 그는 “씹새끼야”를 경상도 억양으로 내지르는 양아치 고교생이 되어야만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는 뭔가 좀 달라져야 하지 않느냐. 또 동생인데 괜찮으냐. 아무런 상관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을 하는 게 배우로서 옳은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른바 ‘연기변신’이라는 이상한 단어들이 이 나라에는 존재한다. 살을 붙여도 연기변신, 빼도 연기변신. 눈에 힘만 조금 더 줘도 연기변신이란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변신이라는 게 중요할 수도 있죠. 하지만 변신을 위해서 작품을 선택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은 전혀 없어요. 제가 또 다른 역할에 도전한다면, 그건 한번 해봤던 역할을 또 한번 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스타라면 같은 역할을 반복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저는 스타 이전에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사실 대사 하나하나에 동그라미를 치며 촬영을 준비하는 원빈에게, 작은 대사들이 자주 수정돼나갔던 <우리형>의 현장은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 “현장의 바뀌는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아서 작품을 선택했고, 대사 하나에서 오는 느낌이라는 게 분명히 있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둔 감정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중간에 쪽지대본 받는 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동의하지 않을 때 저는 의견을 분명히 이야기하는 사람이거든요.” 철저하다. 신중하다. 그게 때로는 까탈스럽다로 바뀌어 활자화되는 세상이지만, 이 남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고보니 이 남자. 이제 28살. 갓 데뷔한 소년배우들과 경쟁을 할 나이도 어느새 지난 것이다. 나이를 알아차릴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에 모두가 속아넘어갈지라도, 원빈은 스스로를 속여가며 스타덤에 올라 있을 생각은 없다. “고정된 이미지는 깨려고 해서 깨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으면서 깨지는 거겠죠. 동건이 형도 한때는 그저 잘생긴 배우였지만 지금은 중후한 배우의 느낌이 배어나오거든요. 내가 이 나이에 고정된 이미지 한번 깨보겠다고 변신에 기를 쓰면 물론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런 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