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는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걸 거는 남자다. 사랑하는 여자 샤오메이를 위해 3년 동안 스파이 짓도 불사하며 고진감래의 나날을 보내온 그를 순애보적 사랑의 결정체라 불러도 좋으리라.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가 목숨걸고 사랑해온 그 여자는, 만난 지 불과 사흘밖에 안된 다른 놈에게 홀라당 빠져 버렸다. 삼각관계의 시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상적인 로맨스’의 완성이란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 어떤 삼각관계도 결국 잉여를 남기기 마련이고, 그 잉여물의 이름은 ‘패배자’ 다.
치정과 애욕으로 얽힌 삼각관계의 작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기억하는가? 싸가지 없고 맹목적인 재벌 2세와, 자존심 강하고 불우한 청년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전국의 많은 여성들은 대리만족의 짜릿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복많은 기집애, 양손에 떡을 쥐었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는 두 매력 남 가운데, 나라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그 고민은 혀끝에서 아껴 먹는 사탕처럼 애틋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가! <연인> 속 삼각관계에는 이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휘발되어 있다. ‘집착 대마왕’ 리우가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설레기는커녕 찜찜하고 불편해진다.
이건, 누가 봐도 안 되는 게임인 것이다. 야들야들한 피부를 자랑하는 한창 나이의 꽃미남 진과 대결하기에 리우는 역부족이다. 나이를 숨길 수 없을 만큼 홀쭉하게 야윈 뺨과 까칠한 피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는 안절부절 초조한 눈빛을 번뜩이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집착한다. 강제 추행하는 것으로 소유권을 확인하려 든다. 아 정말이지 그 남자, 제대로 질척댄다. <연인>의 리우는 삼각관계의 당당한 한 축이 아니라, 아리따운 한 쌍의 청춘남녀 진과 샤오메이 커플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는 소도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리우는 오로지 피해자인가? 글쎄올시다. 분명한 건 그에게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관음증 환자거나 심각한 마조히스트가 아니라면, 사랑하는 여자의 여행에 젊고 잘생긴 남자를 동행시키고는 몰래 숨어서 관찰하는 인간이 어디 흔하겠는가. 그 여정을 통해 리우는 자신의 여자를 시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기야 3년 세월이면 지칠 만도 하다. 그는 이제 그만 맹목적인 희생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응징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것이 강호(江湖)의 규칙이다. 예상했던 바대로, 여자는 자신을 져버리고 새로운 꽃 미남을 택한다. 여자가 먼저 배신했으므로, 그는 여자의 몸에 칼을 꽂을 합당한 이유를 얻었다. 수동적인 운명의 피해자가, 처음으로 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이다. 치정 무협극 <연인>은, 한 남자의 벌거벗은 욕망과 그 욕망의 막장에 대한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