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LA] 코리아 타운 넘어서 미국 속으로
2004-10-11
글 : 옥혜령 (LA 통신원)
제1회 로스앤젤레스 한국국제영화제, 관객들의 호응 컸지만 기획력 미숙은 아쉬워

‘대한민국 나성 특별시’라는 로스앤젤레스에 정식 한국영화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긴 했다. ‘제1회 로스앤젤레스 한국국제영화제’(LAKIFF, 9월24∼5일, 10월1∼2일)는 코리아 타운의 한국 비디오가게를 주무대로 하던 한국영화와 그나마 관객을 찾지 못하던 코리안 아메리칸 감독들의 영화를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남가주대학(USC) 동아시아학과의 김진희 교수와 한국문화원, 아메리칸 시네마테크가 공동 주최한 이번 영화제는 한국영화 상영전, 단편영화 프로그램 및 한국영화 컨퍼런스 등의 부대행사로 이루어졌다. 영화제 프로그램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비롯한 한국 장편영화 4편(<장화, 홍련>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사마리아>)과 영화제쪽이 선정한 20여편의 중·단편영화가 이집션극장과 남가주대학에서 상영되었다. 매사 첫걸음이 쉽지 않듯, 딱 그만큼의 성공과 아쉬움을 남긴 영화제를 되짚어본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할리우드 이집션극장에서 진행된 한국영화 상영전이다. 코리아 타운을 벗어난 공식 상영 기회가 드문 한국영화들이 현지 관객에게 선보이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그 성과가 흥미로웠다. 특히 박찬욱 감독이 직접 참석한 9월24일의 <복수는 나의 것> 상영에는 500여명의 현지 관객이 극장을 가득 메워, 감독의 지명도를 가늠케 하기도 했다. 영화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와 영화 상영에 앞서 남가주대학에서 따로 마련된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복수의 한국적 의미(계급갈등과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에 대한, <복수는 나의 것>), 혹은 무국적성(플롯 장치로서, 그리고 상징적 공간에서의 이야기로서, <올드보이>)과 같은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뿐 아니라 한국영화에서의 폭력의 재현,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관계 등의 이슈가 쟁점이 되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왜 한국영화에서 강도 높은 폭력이 빈번히 묘사되는지, 혹은 유난히 어둡고 우울한 소재가 많은지”에 대한 질문에, “나도 미국과 유럽영화에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고 답해, 박수 갈채를 받기도. 박 감독의 재치있는 역공은, 사실 액션과 호러 장르의 아시아영화가 환대받고 있는 미국 영화계의 흐름 속에 한국영화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의미심장하게 환기시켰다. 영화제 기간 중 확인된 <올드보이>의 내년 2월 개봉 계획과 정상급 주연배우 캐스팅이 진행 중인 리메이크 프로젝트의 추이가 내심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객의 호응면에서는 한국산 영화들에 못 미쳤지만, 영화제 두 번째 주, 남가주대학에서 상영된 중· 단편영화들은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살아가는 미국땅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영화제에 나름대로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한 듯하다. LA폭동 이후를 다룬 김대실 감독의 <젖은 모래>가 대표적인 경우. 한편, 한국의 성형수술 붐을 밀착 취재한 엘리자베스 리 감독의 <그녀에게 좋은>(Good for her)의 경우 외지인의 시각이 갖는 신선함을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상업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호응을 확인한 영화제의 성과 이면에 첫 번째 행사이기에 드러난 기획과 진행상의 미숙함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영화제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지적된 통역의 부정확성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영화와 산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컨퍼런스와 기타 부대행사가 매끄럽지 못한 진행으로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끌어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제1회가 영화제의 기반을 닦았다면, 명실상부한 미주 최대의 ‘한국국제영화제’를 지향하는 영화제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걸음이 좀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영화제 타이틀이 제시하는 ‘한국’과 ‘국제’라는 두 명제의 상호관계가 ‘한국인에 의한 혹은 한국인에 관한’ 영화들을 통해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지는 이후 영화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미국 내 한국영화 팬뿐 아니라 한국영화 연구자,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심도있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숙제해결의 한 방편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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